열다섯 번째 별. 500만 원...
위이 이잉.. 요란스러운 청소기 소리가 귀를 때린다.
“저기요 일어나세요. 저 쪽 가서 자세요.”
천근만근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락커룸 한 구석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이고 다시 잠을 청해 본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온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갑자기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편하게 잘 수도 없는 삶이라니. 정말 나 자신이 초라하다.
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하러 온 곳은 목욕탕이다. 3000원에 하루 밤을 보낼 수 있으니 나의 처지엔 가장 알맞은 공간이다. 낮엔 식당 주방에서 잡일을 하고 있다. 설거지, 서빙, 홀 청소, 힘든 일은 모두 도맡아서 하고 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일하고 받는 월급은 너무 작다. 힘든 만큼 보상을 받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 나에겐 이 길 밖에 없다. 뭐든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
엿 같은 청소기 소리에 잠을 한번 깨니 다시 자기가 힘들다. 조금 더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질 않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목욕탕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다. 뿌옇게 김 서린 거울에 내 얼굴이 보인다. 정말 못생겼다. 29살 그래도 아직까진 꽃다운 나이인데 정말 초라하다. 2달째 목욕탕 생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은 언제쯤 끝이 날까. 고기 냄새 가득한 옷을 주섬주섬 다시 꺼내 입는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나는 20살 초반 큰 한정식 집 사장이었다. 나름 장사도 잘 돼서 방송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2명을 얻었고 그렇게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다.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나의 인생은 그렇게 행복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못했다. 사업이 기울어지고 아들 둘을 시댁에 맡긴 채로 나는 혼자 살아야 했다. 아들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목욕탕에서 지내기를 2달 남짓. 나는 이제 지쳤다.
참. 나도 젊었을 때 인기가 많았었는데. 돈도 많고 예쁘고 성격도 호탕하고. 그런데 지금은 거지가 따로 없다. 옷에서는 냄새가 가득하고 관리를 하지 않은 머리는 길쭉하게 길러 끝은 다 갈라지고 아무튼 여기저기 온몸이 젊은 여인이 아니다. 내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더 망가질 것이 없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망가지는 나를 보고 있자니 삶이 점점 허무해진다.
또 하루가 끝이 났다. 전쟁 같은 하루였다. 다시금 목욕탕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평상 위에 올렸다. 멍하다. 파리 새끼가 귀 주변에서 나를 귀찮게 한다. 눈만 굴려 파리를 쫓아간다.
‘팔 들 힘도 없어.’
낮은 천장에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길쭉한 흰색 형광등이 보인다.
‘꼭 나를 닮았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밝게 무언가를 비추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태우는 게. 근데 너무 불쌍하잖아.’
선명하던 흰색 빛 무리가 점점 흐릿해진다. 밝은 빛이 결국 나의 시선을 가득 채운다. 입에선 신음이 흘러나온다.
‘참아야 해. 여기서 울면 안 돼.’
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울면 우는 것이 습관이 될까 무섭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나는 끝까지 강해져야 한다. 버텨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기둥이어야 한다. 무너지는 순간 나의 아래에 있는 소중한 나의 아들 둘이 다쳐버린다.
‘내가 무너지면, 내가 여기서 울어버리면 안 되는데.’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다. 한 마디 위로해 주는 사람 없는 것이 더 슬프다. 눈을 돌려 봐야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다 쓰고 버린 면봉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건들, 많이 낡아 쓸 때마다 불만인 헤어 드라이기 등 나를 위로해 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 나와 같이 불쌍한 것들밖에 없다.
500만 원이 없어 방을 못 구하고 있었어.
빌릴 곳도 없고, 너희는 점점 자라서 돈은 점점 많이 들어가고. 다 포기하고 싶었지 그때는.
근데 내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너희가 끝이라는 생각에 무너질 수가 없었어. 제일 힘들었던 게 뭔지 알아 영은아? 이상하게 목욕탕에서 잠자고 하루에 한 끼로 버텨도 그게 힘든 게 아니라 너희 얼굴을 못 본다는 게 정말 힘들더라. 매일 밤 자기 전에 그 사실 때문에, 너희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눈물이 나더라. 엄마의 감정이라는 게 정말 무서워 나는 생각도 안 하고 자식새끼들 생각만 죽어라 하니. 그래도 고마워 영은아. 내가 이렇게 일어서고 다시 돈도 많이 벌고 너희를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었다는 거. 내 소원이 이뤄 진거 모두 다 너희 덕분이야. 영은이 영일이. 둘 덕분이야.
나와 엄마는 종종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옛날 일을 꺼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야기를 해 주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듣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후회 한 번 없다니.
다 내 덕분이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갑자기 엄마가 웃으며 말을 했다.
“그냥 너도 자식새끼 낳아 보면 다 이해가 돼. “
한 마디가 떠나질 않는다.
아 무겁다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