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긴 시간 혼자 앉아 있어 봤다. 아무도 없어 스산한 건물로 둘러싸인 쾌쾌한 실외기 바람이 나오는 곳에 앉아 있었다.
나의 바다에 볕이 지고 있었다. 볕이 들어 노닐던 고기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저 아래에서 마주치기 힘든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었던 것 같다.
시원했던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생각들이 가슴을 파고들어 생각은 감정이 되기 시작했다. 감정은 나를 점점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무언가를 보았지만 무언가 인 만큼 그냥 무언가 일 뿐 정확한 실체는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생각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봤다는 것인가. 실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그냥 따뜻하지만 차갑고 차갑지만 따뜻한, 기쁘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기쁜, 맑은 밤 쾌적한 공기 사이로 내리는 나만의 소나기 같았다.
슬프지만 마냥 슬프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분이 좋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빈다는 것,
어쩌면 가벼워 어디든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빈 것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입김 따위에도 날아가 버린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누군가의 편도 되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적이 된다는 것이니 적을 만들지 않음에 나는 착한 사람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러면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심각한 모순이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인 것인가. 누군가에게 천사도 악마도 아닌 것인가. 그냥 이렇게 살다 가기엔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너는 정녕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엔 정답이 있는 것인가.
정답이 있어 사람들은 그렇게 나를 아는 듯 떠드는 것일까. 나는 그 정답을 부정하는 것일까. 답지를 보고 틀렸다고 나는 끝까지 부정하는 것인가.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알기에 나를 정의하는 것인가. 1+1=2라는 공식이 생각에도 대입이 되는 것인가. 너는 이렇기에 이런 상태이다 저렇기에 저런 상태이다, 방정식을 풀 듯 사람의 심리를 풀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럼 누가 나를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
산다는 것.
고통을 배워 고통 앞에 서는 것이 삶이다. 점점 괴물 같아지는 고통 앞에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이러했다. 괴물 같은 고통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는 것. 나의 각오는 이러했다. 갑자기 나는 나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좋다고 고통 앞에 서는 것인가. 고통 앞에서 얻는 것은 눈물뿐 아니겠는가. 어차피 피고 질 운명인 것을 왜 빗속에 살려하는가. 따사로운 햇살이 그립지 않은 것인가. 젖고 또 젖어 더 이상 젖는다는 말이 의미 없어질 만큼 그렇게 젖어대면 그렇게 평생 젖어버리면 말릴 틈 없이 가버릴 것 아닌가. 너의 피부는 퉁퉁 불고 썩어 문드러져 참 보기 좋지 않을 것 아닌가. 뭐에 의연해진다는 것인가.
그래도 속절없는 세상은 항상 비가 오니, 어차피 젖을 거라면 조금 더 빨리 젖어 아직 처마 밑 나의 사랑하는 동생에게 아무렇지 않다고, 춥지 않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려움에 떨기 전에 안심을 시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고통스러운 얼굴 숨기고 웃는 얼굴로 나오는 순간 한 걸음, 자신감 있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너는 정녕 후회하지 않겠는가.
답도 없는 것들을 나는 아마 평생 이렇게 누구도 관심 없을 곳에 적을 것이다.
답을 찾으려고 이 글을 찾은 분들에게 조심스레 미안하다 사과를 한다.
섞이고 섞여
섞이지만 완전히 섞이지 못해 어떠한 색깔이 있는지 도저히 볼 수 없는 투명한 유리컵 안에 나의 구부러진 색들은 소름 돋게도 모두 다 반대의 색을 가지고 있다.
답을 찾지 않으려 한다. 그냥 쏟아내려 한다.
모든 것에 정의는 있다.
사람에게로 돌아 서는 순간
단 하나의 답도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