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요?"라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법
거울 속의 나를 용서하고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한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장 깊숙이 밀어두었던 낡은 배낭 하나를 꺼내는 일이었다. 33년 동안 내 분신과도 같았던 가죽 서류 가방은 이제 서랍 속에 잠들었다. 대신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 투박한 백 팩이 나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가방 지퍼를 열고 빳빳한 새 공책 한 권과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볼펜 한 자루를 넣으며,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매만졌다. 그것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기 이전에, 무너진 내 삶을 재건하기 위한 서툰 첫 번째 삽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이 비장한 결심을 그리 다정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퇴직 후의 안락한 휴식을 기대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대학 입학'과 '자격증 도전' 소식은 이해할 수 없는 기행(奇行)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오랜 지인에게 요양보호사 학원에 등록하고, 수원과학대학교 외식조리창업과에 원서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차가운 물음표였다.
"지금요? 언니, 제정신이야? 이제 와서 무슨 대학이고 공부야. 이제는 남들이 차려주는 밥 먹으면서 여행이나 다녀야지. 그 고생을 또 사서 하겠다고?"
'지금요?'라는 그 짧은 세 글자는 내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 물음표 안에는 60대라는 나이를 인생의 '황혼'이나 '마무리'로만 치부하는 세상의 견고한 편견이 담겨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내 안의 의구심과 매일 밤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33년 동안 공직자로 살며 늘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시하던 내가, 인제 와서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배움을 구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안경을 올려 써야 겨우 보이는 그 복잡한 이론들을 이 굳어버린 머리로 외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고 '뒤늦게 욕심을 부린다.'라며 비웃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 투자 사기로 전 재산을 잃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길은 오직 하나, 내가 여전히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선물이자, 고등학교 3학년으로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던 예쁜 딸아이가 있었다. 내가 절망에 빠져 누워만 있다면, 이제 막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내 아이의 미래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부모가 무너지면 자식의 세계도 함께 균열이 간다는 사실이 나를 채찍질했다.
"엄마도 다시 시작할 거야. 너와 함께 공부하고, 너와 함께 성장할 거야."
그것은 딸에게 건네는 약속이자,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나는 '느린 학습자'가 되기로 자처했다. 1월의 시린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요양보호사 학원으로 향하던 첫날, 나는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수업은 밤 9시 30분 실버인지활동지도사 과정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한 시간이면 끝날 암기 사항이 나에게는 서너 시간이 걸렸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다시 읽으면 생경한 단어들과 싸우며 나는 내 한계를 매일 마주했다.
대학 강의실에서의 경험은 더욱 혹독했다. 자녀뻘 되는 동기들 사이에서 돋보기를 치켜 쓰고 리포트 한 줄을 적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주말에는 교회 봉사까지 병행하며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독하게 사느냐?"고 혀를 내둘렀지만, 나는 독해져야만 했다. 가만히 있으면 다시 그 지독한 투자 사기의 악몽이, 무기력의 늪이 나를 삼킬까 봐 나는 스스로를 배움이라는 틀 속에 가두었다.
배움은 내게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돋아나는 새살이었고, 수식어가 지워진 이름표 위에 내가 스스로 써 내려가는 새로운 직함이었다. "지금요?"라고 묻는 세상의 물음표에 나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는 행위로 대답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 지금의 내가 가장 젊고, 지금의 내가 가장 절실하니까."
나는 그렇게 타인이 던진 차가운 물음표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운 느낌표로 바꾸어 나갔다. 60세의 학사모를 향한 나의 행진은 화려한 전성기가 아니라 처절한 사투였지만, 그 걸음 속에는 33년 전 처음 공직에 임용되던 날보다 더 선명하고 단단한 용기가 깃들어 있었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았다. 나에게 배움은 제철이 따로 있는 과일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정성껏 가꾸어야 할 내 마음의 정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