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탈멘토 Nov 07. 2022

1등아 도대체 어디 숨었니?


본교는 양심 잔반 스티커제 포상의 일환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뽑기를 한다.

사실 시작한 지 겨우 3주째로 아직 한 달이 안됐다.

식생활 교육을 명목으로 해마다 학교 예산을 조금 편성하는데

작년까진 급식 방학과제(콩나물 키우기 체험 밀키트, 고추장 만들기 체험 밀키트 등)에 중점 사용했던 것을

올해는 날마다 잔반 없는 날에 주력한 이벤트 및 상품 구입비로 사용하고 있다.  


날마다 잔반 없는 날을 해보자고 아이들에게 권유하고

급식 남기지 않고 먹기 자율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른바 잔반 양심 스티커제를 운영 중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급식을 남기지 않고 먹기란 어른에게도 매우 힘든 미션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90% 이상의 아이들이 성실히 참여하고 있다.


"스티커를 모은 개수로 매주 뽑기를 합니다."


뽑기에 참여할 수 있는 스티커 개수는 미리 알려주면

목표치에 도달 후 느슨해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뽑기 당일 개수를 발표한다.   



드디어 금요일!! 뽑기 하는 날이다.

매일 스티커를 빠짐없이 모았다면 오늘까지 15개가 된다.

15를 모두 모은 아이들도 있고 몇 개 부족한 아이들도 있고 몇 장 모으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10개 이상 모았다면 아주 칭찬할만한데 과반수 이상이 10개 이상 모은 것 같다.

10개 이상 모은 아이들에게 포상을 줘야지.

그런데 고민이다.

10개 이상 모은 아이들에게만 뽑기를 할 수 있게 하면

나름 열심히 했으나 10개를 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실망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탈자가 생길 우려가 있다.

잔반 없는 날을 지속하려면 모든 아이들이 즐겁고 힘이 나야 한다.

  

그렇다면 잔반 없는 날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뽑기의 기회를 주자.

그리고 아주 열심히 참여 중인 아이들(10개 이상)은 한번 더 뽑기를 하는 걸로 하자.

 


당일 급식 게시판에 아래와 같이 공지했다.

1개 ~ 9개까지 모은 학생은 뽑기 1번 (더 성실하게 참여하라는 의미에서)

10개 이상 우등생은 뽑기 한번 더


모두 뽑기를 할 수 있으니 실적이 조금 저조한 아이들은 아쉽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점심시간 밥 먹으러 줄 선 아이들이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게시판의 내용이 궁금해 죽는다.

한 아이가 담임 선생님께 꾸중들을 각오로 줄을 이탈해 후다닥 뛰어와 기어이 내용을 확인한다.

다른 때 같음 아이들이 "선생님 저 애는 줄 안서고 뛰어 갔어요"라고 고발? 했을 텐데

내심 그 친구를 응원한다. '선생님한테 걸리기 전에 얼른 가서 내용을 확인하고 와.'

줄을 이탈한 아이를 발견한 담임 선생님이 "제자리로 돌아와"라며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한다.

아이는 게시판의 내용을 얼른 확인하고 얌전히 줄 서 있는 아이들에게 뛰어와 의기양양 대단한 정보를 전달한다.


오늘까지 스티커가 10개 이상이면 뽑기 2번 할 수 있어!!

"앗싸" 하는 환호성과 "아 ~" 하는 탄식이 교차한다.

본인의 스티커가 9개인지 10개인지 헷갈리는 아이들은 본인의 스티커 개수를 확인하기 바쁘다.




가장 먼저 배식을 받는 학년은 보통 마지막 학년의 배식이 끝나기 전에 식사를 끝낸다.

그럼 다른 학년이 배식을 받는 중에 식사를 마친 학년의 뽑기가 시작된다.

급식을 마친 아이들이 신나게 뽑기를 하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 아이를 데려간다.

"급식 받은거 먼저 먹고 그 다음에 뽑기를 해!!"

오늘 급식을 먹기도 전에 뽑기부터 하러 왔다 딱!! 걸렸다.

아이들이 평소보다 들떠 아무래도 선생님들의 생활지도가 평소보다 신경 쓸게 많다.

 


오늘의 기본 뽑기 상품은 동전 초콜릿

뽑기 등수는 1등부터 6등까지 차등이 있다.

6등은 동전 초콜릿 기본 2개이고 5.4.3.2등으로 올라갈수록 동전 초콜릿을 1개씩을 더 가져갈 수 있다.

고학년의 어느 남학생이 운 좋게 3등 5개에 당첨되었다.

신나서 싱글벙글 웃더니 급식을 먹고 있는 어느 여학생에게 1개를 슬쩍 준다.

여학생은 멀뚱멀뚱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초콜릿을 받아 챙긴다.

오 ~ 쟤가 쟤를 좋아하나 봐. 받자마자 달려가 선물 공세네 ㅎㅎ


4

오늘 처음 뽑기 진행을 도와준 교직원분이 "영양 선생님 이거 너무 재밌어요. 담주에 또 해요."

이제 매주 금요일마다 할 겁니다. 금요일에 시간 괜찮으면 와서 도와주세요.

시간 안 되는 날은 당일 누구라도 긴급 섭외하면 되니 편하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뽑기에 길게 늘어선 줄

뽑기 2번에 해당되는 친구들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린다.

뒤쪽에 줄 서 있던 한 아이가 내게 와서 "선생님 뽑기 안 해도 되지요?"

"응. 안 해도 돼."

정신없는 틈에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는데

아마도 줄 서서 뽑기를 할 만큼 뽑기 선물(달달 초콜릿)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주 뽑기 상품인 타투는 엄청나게 인기였는데.... 이번 뽑기는 이탈자가 2명 발생했다.  

선물을 더 매력적인 걸로 준비해야겠군.

(상큼한 아이템 있음 추천 바랍니다.)

 

오늘도 급식을 깨끗하게 먹었다고 자랑하는 아이들

식판 샷. 식판은 뷔페 접시와 식판 중에 자유롭게 선택

삼겹살 모둠 소시지 & 야채구이

멸치 아몬드 볶음 & 모듬쌈

어느 색을 고를까...?


평소 말이라곤 없던 4학년짜리 남학생 한 명이 초코볼을 뽑았다며 내게 자랑을 한다.

선생님 이런 거 해서 너무 좋아요. 모두 모두 다 좋은 거 같아요.

음식도 안 남기고 환경도 지키고 뽑기도 넘 신나고 초코볼도 맛있어요.

그래? 그럼 그 초코볼 선생님 한알만 줘볼래? 선생님은 못 먹어봤네. 맛이 궁금하다.

그랬더니 내 손바닥을 펼쳐 넉넉하게 부어준다.

아니야 선생님 딱 1개만 먹어보면 돼.

저는 선생님 더 많이 주고 싶어요. 드세요.

아이고 ~ 키특해라. 고마워라. 흐뭇해라. ㅎㅎ




오늘 뽑기에서는 1등과 2등이 안 나왔다.

그래서 동전 초콜릿 그물 뭉치? 선물이 그대로 남음/ 1등과 2등이 도대체 어디 숨어있니?

다음 주에 영광의 주인공을 기다려보자.

 

교직원들이 뽑기 구경하다가 "우리도 한번 하면 안돼요?"

지난주 급식 안 남기고 잘 먹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뽑아도 됩니다.

대신 1.2.3등 귀하고 비싼 거 뽑으심 안돼요.

아... 1등 나오면 어떡해. 두구두구두구 5등, 6등!!

잘했어요 ~ ㅎㅎㅎ



잔반 스티커는 알록달록 색상이 혼합되어 있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색만 골라서 모으는 아이들도 있다.

일단 이번 주까지 모은 스티커는 동그라미로 표시


다음 주부터 스티커 모으기 다시 리셋합니다.

조금 저조한 친구들은 다음 주부터 새로운 각오로 도전하세요.


이미 많이 모은 친구들을 연말에 누계로 포상할 예정이니 억울해하지 말도록!!

모두 즐겁게 참여해요 ~~


  

음식은 골고루 맛있게 알맞게 즐겁게

배식대 위에 붙여둔 음식물 쓰레기 남기지 않기 포스터와 홍보물


급식을 남기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

환경을 파괴하는 것


날마다 잔반 없는 날에 열심히 참여해줘서 고마워.

담주에 또 재밌는 뽑기 준비할게. 

담주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먹자.

매거진의 이전글 숙연한 마음으로 보낸 할로윈 급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