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을 동료들, 심지어 자기까지 희생해가며 구해내야 할 당위가 있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당연히 없다고 답할 것이다. 이 의문은 영화 내에서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라이언을 구해야 하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목표 그 자체가 전쟁을 거스르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전혀 도움 되지도 않고 오히려 아군의 병력에 타격을 입히는 목표의 특성이 전쟁통 내에서 깊은 가치를 만들어 주었다.
먼저 라이언의 특성. 즉, 그가 가진 상징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라이언은 전쟁의 비극 그 자체를 담은 인물이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전쟁 속에서 전사했으며 자신도 전쟁 한복판에 몸 담그고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아마 홀로 남겨진 엄마는 막내 라이언까지 전사해 버린다면 미국의 전쟁 상황을 비난하며 증오할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설득해 보아도 말이다. 따라서 라이언을 구한다는 건, 매우 비극적인 전쟁통 속에서도 그나마 몰인간성을 덜어낸다는 것과 같다. 미군은 이런 라이언의 특성을 이용해 그를 구출하라고 밀러 대위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 이제 그를 구해야 하는 밀러 대위의 특성은 어떤가. 밀러 대위는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육성하는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직업에서 아흔 명이 넘게 전사한 부대의 대위로 극단적으로 변화된 사람이다. 부하들이 한 명 죽으면 10-20배 넘는 사람들을 구한다는 근거 따위 없는 헛된 가치를 안으면서 그나마 죄책감을 덜고 있다.
결국 라이언을 구한다는 건, 전쟁을 거스르는 목표다. 일단 전쟁에서 군인들의 목표는 상대편을 죽이고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표다. 이런 전쟁통 안에서 모두는 ‘죽여야 한다’ 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곳에서 ‘구해야 한다’ 는 의식은 엄청나게 큰 가치를 가진다. ‘인간성’이 있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과 완전히 대조된다. 전쟁의 관점에서 1명의 목숨을 구하고자 여러 목숨을 담보로 거는 행위는 아주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며, 비이성적인 행위다. 하지만 인간성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비효율적이더라도 가치가 없는 행위는 아니다. 그를 구함으로써 절망적인 전쟁의 비극에서도 희망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줄 수 있다. 사람을 죽이고 동료들이 죽으면서 얻는 헛된 가치보다 그 한 명을 구하는 게 훨씬 값지고 확실한 가치인 것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밀러 대위는 그나마 인간적 가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스필버그 감독님은 이런 가치를 더욱 잘 보여주기 위해 전쟁을 매우 현실적이고 잔혹하게, 비참하게 그려나갔다.
여전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비합리적이며 당위성 없는 임무다. 하지만 그 비합리적인 특징이 인간성을 만들어 준다는 데에서 모순적인 가치를 내뿜는다. 애초에 사람을 죽임으로써 안전한 국가를 만들자는 전쟁 자체가 모순적이다. 결국 계속 생각을 물고 늘어트리다 보면, 제일 비합리적이며 당위성 없는 건 전쟁 그 자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