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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u Jan 13. 2019

#64. 나는 이 관계에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아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이었다. 그와 내가 좋아하는 바가 있었는데 역시나 그날도 그 바를 들려 카바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어떤 외국 남자와 한국 여자가 다가오더니 말을 건넨다.


"한국 사람이시죠?"


그와 나의 모습을 보며 '한국사람이다' '일본 사람이다' 서로 입씨름을 하며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고 했다. 외국 남자는 당연히 '일본 커플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여자분은 남자 쪽은 한국인지 일본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여자를 보면 딱 한국 여자로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를 보며 그런 실랑이를 벌인 것이 조금은 생소하고 신기해서일까. 그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들의 대화는 시작되었고, 그렇게 밤늦도록 함께 술을 마시며 짙어진 밤에 녹아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자 이름은 에르네스토, 여자 이름은 유진. 그들은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이곳에 6년째 살고 있다는 유진언니는 외국문화의 오픈된 마인드와 불필요한 잣대가 없는 이 나라가 참 좋다고 했다. 당연히 남자 친구인지 알았던 에르네스토는 단순한 '친구'로 그는 동성연애자라고 했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외국인 남자 하나가 더 있었다. 유진언니는 그 친구를 먼저 알고 있었고, 그 친구의 남자 친구가 에르네스토였다고 한다. 하지만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기고 어쩌다 보니 중간의 매개체였던 그 친구는 멀어지고 남겨진 에르네스토와 유진언니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 현재까지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낯선 사람들에게 각자 묻어두었던 진심 어린 이야기들을 더 쉽게 풀어냈다고 했던가. 우리는 처음 만난, 아니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언니의 현재 남자 친구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10살 어린 연하남과 썸? 을 타고 있다는 언니는 확실하게 '보이프렌드'다 '저스트 프렌드'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확한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이 관계에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정의된 관계 속에 기대심이 나타나고, 그 관계의 책임감과 행동들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어쩌면 정의 내리지 않는 것이 혹시 받을 상처에 대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언니에게 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그에 맞게 따라오는 일종의 '행동'들이 자유롭게 살려는 방향성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가 아닌 외국이라는 특별한 조건 또한 큰 몫을 차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든 당당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삶을 꿈꾸지만 어찌 되었건 연인사이에 있어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기에 그게 참 서럽다. 적어도 나는 연인의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당당하고 싶다. 불확실한 관계로 상처받고싶지도 않고, 일명 '밀당'이라는 감정줄타기로 애타고싶지 않다. 인연이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온전히 내 사랑을 표현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받은 상처라도 우리의 삶과 관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으려고 한다. 


누군가와 관계에 있어 정의를 내린다는 것.

지금 나는 그와의 관계에 있어 

조금은 두렵지만 행복한 상태를 꿈꾼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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