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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May 08. 2024

02. 12살짜리 상금헌터

첫 대회에서 상금의 참 맛을 알아 버린 이후 본격적으로 상금이 있는 대회를 골라 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그림대회의 상금이 짭짤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시간 때마다 대회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곤 했다.


한 번은 지역 모 대형마트에서 지역 내 오픈기념 벽화대회를 열었는데 대상 상금이 무려 백만 원이었다. 백만 원이라니! 엄마가 한 달 동안 쉴 틈 없이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그림만 잘 그리면 가질 수 있다니.

하지만 이 대회에는 참가인원이 4명 이상이라는 것이 조건이 붙어있었다. 백만 원의 큰 상금이 걸린 대회, 그냥 포기할 수가 없다. 반마다 돌아다니며 그림에 자신 있는 사람이 있느냐며 수소문을 시작했다.





"나 미술학원 다니는데 벽화는 안 그려봤어. 괜찮아?"

"민정아 너 나갈 거야? 그럼 나도 할래"

"옆반에 나랑 미술학원 같이 다니는 애 있는데, 걔도 데려갈까?"


그렇게 모인 3명을 데리고 선생님께 가서 그림대회를 참가하겠노라 말씀드렸다. 항상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아이가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은 선생님도 처음보다 보니 놀란 기색이 여력 했다. 그야말로 돈에 눈이 먼 초등학생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너희들끼리 참가하는 건 안되고 미술선생님을 끼고 가든지 부모님을 데려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자 미술학원을 다닌다고 처음 손들어준 친구가 '그럼 저희 엄마한테 말해서 데려달라고 할게요"라고 말해주었다. 다행이다.


대회 당일, 친구어머니께서 학교 앞으로 우리를 픽업하려 와주셨고 큰일 없이 대회를 참가하게 되었다.

도착해 보니 말이 벽화 그리기지 벽에 커다란 도화지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사실 나 말고 나머지 아이들은 '학교를 하루 쨀 수 있다'는 메리트에 참여한 것이 제일 컸기 때문에 나만큼의 열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했다. 100만 원이면 4명이서 나눈다고 해도 25만 원이라는 큰돈이 떨어진다.





벽화의 주제는 '자유주제'였다.

원래 이렇게 사기업에 여는 대회는 주제가 제일 중요하다. 굳이 상금을 걸고 대회를 여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첫 오픈기념'에 잘 어울리는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옆에 다른 참가자들을 보니 대부분 산이나 꽃, 혹은 미래의 도시모습 같은 주제로 그린다. 학교에서 그리는 그림은 대부분 과학 상상 그리기, 혹은 자연을 보호합시다 와 같은 주제이기 때문 일 것이다.


나도 안전하게 비슷한 주제로 그릴 것인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가.

고민해 봤지만 주제에서 조금만 차별성을 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 도시를 그릴까? 그리고 새로 생긴 마트에 오가는 사람들을 같이 그리는 거야"

일단 내가 러프 스케치를 먼저 그렸다. 밤에 이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앞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기도 하고, 붕어빵을 사 먹기도 하는 모습을 담았다. 본 스케치와 채색은  4명이서 같이 나눠서 했다. 풍경화에 자신 있다고 한 친구에게는 나무, 꽃 같은 것을 맡겼고,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 친구에게는 사람을 맡기는 등 각자 제일 잘할 수 있는, 또 재밌게 할 수 있는 파트를 분담해줬다.






4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수상작을 가리기 위한 시상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늘의 대상은 두두학생 외 3명, 축하합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시상대로 올라갔다. 우리는 백만 원을 탔다!


하지만 백만 원이 모두 우리의 것이 되진 못했다.

상금이 커지자 학교에서는 상금의 50%를 학교발전기금으로 내야 한다는 나에게 비보를 전했고, 또 나머지 중 몇 퍼센트는 세금으로 공제하고 받았기 때문에 일인당 1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았을 뿐이다.

조금도 속상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항상 외롭게 홀로 대회를 참여했는데 이번엔 내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같이하자고 했고, 같이 열심히 해서 얻은 상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우리 진짜 잘했다.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갈래 두두야?"

그리고 새로운 친구도 3명을 얻었다.



그렇게 초등학생 때만 받은 상장이 40개가 넘는다. 누가 보면 대단한 모범생으로 보이겠지만 그저 상금을 노리는 상금헌터였을 뿐이다. 엄마는 아직도 상금때문에 내가 대회에 그렇게 집착한 건 꿈에도 모르신다.

평생 모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고나니 언젠가 아셔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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