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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May 29. 2024

03.중학생 사업가

"두두야 컴퓨터 가질래?"


중학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작은 삼촌이 본인이 쓰던 중고 컴퓨터를 우리 집에 들고 오셨다. 그 당시 삼촌은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업무상 새 컴퓨터가 필요해 새로 장만해 버릴까 하다가 중학생이 된 내가 생각나서 가져오셨다는 것이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뛸 듯이 기뻤다. 입학한 첫날 친구들은 '세이클럽'이나 '버디버디'같은 메신저를 통해 서로 친해지는데 나는 컴퓨터가 없어 대화에 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학교에서 빌린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는 게 다였던 나의 일상은 컴퓨터가 생긴 그날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그동안 현실세계에서 보지 못했던 정보들과 사람들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만 했던 많은 것들을 실현시켜주기도 했다. 듣고 싶은 노래를 언제든 들을 수 있었고, 비디오가게에 없던 오래된 해외영화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게임을 통해 매일 상상만 했던 강아지 키우기도 가능했다!

그렇게 컴퓨터를 한두 달간 쓰다 보니 어렴풋이 감이오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내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있다면 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 나와 엄마는 god의 굉장한 팬이었다. 학교에서 지쳐 돌아온 나, 하루종일 돈 버느라 지친 엄마는 매일밤 CD플레이어로 god의 노래를 듣는 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었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 줄게.."


god노래 중에는 힘이 되는 노랫말들이 많았고 희망이 간절했던 우리 가족에게 더 와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있고, 내일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그 가사들은 오늘도 고생했어, 내일도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던 와중에도, 매일 재생시켰던 CD라는 저장매체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국은 저작권계의 무정부시대였다.

무료로 자유롭게 노래를 무제한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소리바다'나 영화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엔피'같은 사이트들이 즐비했다. 지금처럼 돈을 내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스트리밍 하는 개념이 잘 없었다. 그때만 해도 MP3보다는 CD플레이어가 더 보급화 되어있었기 때문에 각각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반 아이들은 '최애'의 CD를 사서 듣는 것이 덕질 방식이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은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어폰을 한쪽씩 끼고 음악을 들으며 어제 본 예능이나 음악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곡이 한 앨범 안에 없다 보니 여러 앨범들을 챙겨 와서 좋아하는 곡들만 CD를 갈아 끼우며 듣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원하는 곡들만 한 CD에 모아서 팔면 되겠다!"

일단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했다.

CD를 구울 수 있는 CD-rw롬을 사기 위해 방과후 학교 옆 홈플러스를 갔다. 가장 싼 모델을 찾아보니 무려 7만 원. 그리고 공 CD는 100개들이로 사면 5만 원이었다. 그럼 자본은 총 12만 원 정도로 잡으면 될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많이 든다면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몇 개를 팔아야 하는지도 생각해 봤다.

시세를 찾아보니  CD 한 장에 3500원 정도.  한 장을 팔 때마다 3천 원의 순수익이 남으니 총 40장만 팔면 본전은 뽑겠다 싶었다. 대회를 나가 받은 상금 대부분은 부모님께 드렸지만, 이따금씩 만원, 이만 원씩 용돈으로 주셨던 것들을 모아둔 돈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돈들을 탈탈 털어보니 가까스로 살 수 있는 돈이 된다.


사업 아이템이 확정됐으니 이제 마케팅이 필요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열렬히 아이돌 덕질을 하기로 유명한 아이에게 다가가 준비해 온 새콤달콤을 슬며시 내밀며 말을 걸었다.

"니가 좋아하는 젝스키스 오빠들 최애곡만 모은 CD 한 장 만들어줄게, 다른 친구들한테 소문좀 내줄래? 7반의 두두가 CD구울 수 있으니까 원하는 음악이나 영화같은거 있음 찾아가라고 말이야"

지금으로 따지만 '리뷰이벤트' 마케팅을 한 셈이다. 


동시에 인터넷에서 여러 카페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지금이나 그때나 글을 올릴 땐 제목이 제일 중요하다. 

[CD구워드려요] ㅇㅇ그룹의 A멤버가 좋아하는 영화 'ㅇㅇㅇㅇㅇ'

[CD구워드려요] ㅁㅁ그룹의 베스트 곡 모음집

[CD구워드려요] ㅇㅇ그룹의 예능 모음집


나의 타겟은 아이돌팬이었다.





팬이라면 클릭을 안 해볼 수 없는 카피라이트를 통한 마케팅은 적중했다. 주문이 쇄도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입금확인을 하고, 확인댓글을 달고, CD를 굽고, 포장해서 우체국으로 등기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CD가 타는 냄새를 매일 맡으며 굽고, 또 우체국을 드나들며 성황리에 진행되었던 CD판매업은 몇 개월 뒤에 신문을 통해 저작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아직도 엄마는 CD를 구워 팔던 그때를 얘기하신다.

부모님의 최애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흙쿠키를 구워 파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말씀하신다.

"옛날 니 생각난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14살짜리가 CD 구워서 팔고..."


그럴 때마다 그건 사실 재밌어서 했다고,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사업수완이 비상했던 나를 칭찬해 달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부모님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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