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브레드 한 여름호]
한 여름호의 마지막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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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이 있어야겠어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글로 쓴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급히 떠나가며 짐 무게를 맞추느라 책을 가져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글을 쓰려면 끝없이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생각과 어휘, 문장을 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나는 자주 다른 사람의 기사나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그렇게 다니다가 한국어 문장을 파괴하지 않고 공들여 쓰는 이들의 글을 만나면 그의 글을 오랫동안 모두 읽었다. 그중 한 사람의 블로그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겠어요."
생일을 맞은 가수 이소라가 자신의 연말 콘서트에서 관객에게 한 말이었다.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겠어요. 사랑할 때만 나오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다 부르면 '이 무대를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자신의 무대를 누군가에게 바치겠다는 말처럼 많은 책의 앞장에는 '...에게'라는 헌정 문구가 담겨있다. 정말 그 사람만을 쓰며 이야기를 썼을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글을 쓰는 동안에는 사랑하는 그 대상 외의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모두 쓴 뒤에는 그 사람을 떠올렸을 거다. 이 글을 읽게 될 수많은 사람 중 나의 글을 진심으로 보여주고픈 단 한 사람 말이다.
나도 수많은 책 속의 헌정 문구를 읽으며 나의 책 앞장에 누군가의 이름을 적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는다면 그에 맞는 글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못했다. 책이 될만큼 긴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애정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나는 책의 허울만 생각했을 뿐 실재의 어떤 것을 만들만큼 글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정말 책을 쓰고 싶어졌다. 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내 아빠의 이야기였다. 나는 다정하고 슬픈 기억과 상실의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가 정말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빠를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인생이 빠져나간 커다란 빈자리를 겪는 사람은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책으로 내게 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꼭 책의 앞장에 '김낙호 씨에게'라고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시집을 내려 만든 파일을 편집하고 내 글을 쓰고 고치며 책 한 권을 낼 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며 거절도 경험했다. 여전히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만들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한 주제로 그만큼의 글을 써냈다는 거였다.
그 외에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책의 맨 앞장에, 영화의 제일 마지막 화면에 쓰고픈 문장을 생각했다. '인생의 단짝에게', '엄마에게', '나의 가족에게'... 그렇게 수많은 문장을 생각했지만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장을 쓰고싶기도 하다. 누가 책으로 내주지도 않는 글을 시작하며 자꾸만 글의 대상을 생각하는 것은 나만을 위한 글은 별로 의미가 없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를 더 나아지게 하고싶어 만든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다.
글이나 음악을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생각할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사랑하는 때에만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동물수도, 분위기나 가치 있는 일, 인생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키고 싶어지고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그저 열심히 부르던 노래에 진심이 담기게 된다. 진심은 이전과 다른 태도를 만들고 그것은 누군가를 감동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길 기다린다. 내 마음은 쉽게 변덕을 부리고 내가 가진 사랑은 컸다가도 작아지길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기에 잘 사랑해내고 싶다고 다짐한다.
2020년 8월 27일 목요일, 김영지
[주간 브레드 한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