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이서가 밤새 미열이 나서 잠을 설쳤다. 새벽 한 시가 좀 넘어 울면서 깨기에 심해지기 전에 열을 내리려고 해열제를 먹이고 열이 내리는지 보려고 잠시 거실 소파에 이서를 안고 앉았다. 지난 주에 남편과 이서가 좋아한다고 새를 그려서 신발장 위에 올려뒀는데, 어두운 데서 보니 새 그림이 진짜 새처럼 보이는지 계속 '째째야, 째째'하고 불렀다. 좀 전까지 아파서 울다가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상 반가운 목소리였다. 귀여운 목소리, 지금 이서 목소리를 내가 안 잊으면 좋겠다.
아기는 아프면 정말로 아기가 되는데 밤새 힘들면 잉- 울며 일어나서 엄마가 곁에 있는지 확인하고 파고들어 안겼다. 아플 때는 아빠 품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아프다가도 엄마 쭈쭈만 물면 안 아픈 것 같고.. 추울까 봐 화장실에 라디에이터를 켜고 열을 내려주려 미지근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줬다. 좀 괜찮아지면 자기도 수건을 하나 들고 내 다리를 닦아줬다. 얼굴은 벌게져서. 물 받아둔 대야에 수건을 던지며 꺅 웃기도 하고 그러다 또 몸이 아프면 잉- 우는소리를 내고 품을 파고들고 쭈쭈를 찾았다.
종종 아빠들은 쉽게 말한다. '엄마니까.' 엄마니까 당연히 좋아하지, 엄마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엄마니까 기다려 줘야지, 등등. 아기를 돌보느라 밤새 수유하고 트림시켜 다시 재우는 것은 정말로 괴롭고 힘들다. 힘들다는 말만으로 표현이 안 된다. 주 양육자는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먹고 자고 싸고 씻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참으며 아기를 키운다. 아기를 낳고 당황스러웠던 건, 생각보다 아기가 내 품을 낯설어 한다는 거였다. 낳았다고 바로 애착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엄마와 아이 둘 다 그랬다. 시간이 지나며 아기를 안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아기도 엄마 품이 익숙해졌다. '애착'은 함께 보낸 시간과 정성이 만드는 거였다. 엄마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노력하니 엄마인 거지, 아이가 그냥 엄마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애착은 '엄마'여서가 아니라 '주 양육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도 엄마 없이,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엄마, 아빠, 아이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아이가 아빠에게 애착을 갖기 어렵다. 가장 큰 애착을 가진 엄마를 마음의 안식처로 두고 아빠와는 놀이만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빠가 정말 '아빠'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아이와 단둘이 놀고먹고 싸고 자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내 오랜 친구는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다며 엄마가 생각난다고 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건 엄마가 나를 그렇게나 사랑해줘서구나..
아기를 키우는 사랑은 정말로 대단한 사랑이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고.. 그 기본적인 것들을 나는 원할 때 하지 못 하면서 아기를 위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한다. 새벽에도 아기가 깨서 울면 잠결에도 아기를 안고 달래 재우고 약 먹이고 씻겨 열을 내리고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건 작은 마음으로 할 수 없다. 그렇게 아기에게 단어를 하나씩 알려주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알려주고 악한 것에서 보호해 주며 기르는 것은 아주아주 큰 사랑이다.
그래서 아기를 키우며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는가 보다. 부모에게 상처 없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한껏 아기를 사랑하며 키워본 사람은 부모도 나에게 그런 사랑을 줬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러면 내 부모가 미웠던 마음도 조금 작아지고 어떤 것은 이해하고 어떤 것은 잊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의 아기들이 행복하고 사랑받길 기도한다. 그 사랑은 꼭 엄마나 아빠가 아닐 수도 있지. 그저 한 명이라도 그 아기를 받아주고 안아주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사랑을 심어주길 기도한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 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 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 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처럼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날 밤 오브 아저씨와 아줌마 사이에 흐르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그것이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리운 메이 아줌마, 신시아 라일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