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577일
저녁 식사 시간, 식탁에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다. 이서는 대화를 좋아하고 아빠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니 하루 중 처음으로 아빠와 제대로 마주하는 거라 하루 종일 모아뒀던 이야기나 지금 떠오르는 것들을 열심히 말한다. 엉덩이를 들썩이는 이서도 진정시켜 다시 앉게 하고 손으로 집어먹으려는 이한이에게 숟가락도 쥐어주다 보면 나와 남편은 점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과 있었던 일이나 남편이 교회에서 일하며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이서도 다 아는 이야기라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서는 "이서도 아는 이야기 하자"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밥 먹을 때는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란다. 이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먼저 하라고 했다. 이서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팔을 쓰다듬었다. 예의 그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엄마, 사랑해. 엄마는 최고의 엄마고 이서는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제 엄마도 아빠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단다. 나는 손을 뻗어 남편의 손 위에 포개고 장난을 섞어 말한다. 자기, 사랑해. 그러면 이서는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보고 잔뜩 기대한다. 남편은 쑥스러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이서를 보며 "아빠는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라고 장난스레 말한다. 이서는 입을 삐죽 내밀고 진짜로 삐친다. 남편과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얼른 진짜 할 말을 하라고 한다. 남편은 나를 보며 말한다. 자기, 사랑해. 이서는 다시 활짝 웃는다.
남편은 표현이 적은 사람이다. 늘 표현을 바라는 나와 몇 년을 같이 살았고 살가운 이서도 키우면서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본래 성격은 무뚝뚝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생활 내내 많은 걸 오해했지만 이한이를 낳고서는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표정과 말로 다정한 것을 원했던 사람이라 그런 그의 표현을 마음으로 느끼기 어려워도 머리로 입력하며 하나씩 배웠다. 남편의 사랑 표현은 이런 것들이다. 비눗방울 총을 사서 이서와 내가 둘이 시도해 보려 신나게 밖으로 나갔는데 알고 보니 건전지를 넣어야 하는 제품이었다. 집으로 급히 들어와 건전지를 찾는데 남편은 우리를 보고는 수업을 가려다 말고 드라이버를 가져와 손수 열어 건전지를 넣어준다. 그리고 들고나가 제대로 비눗방울이 나오는지 밖에 서서 확인하고서야 학교에 간다. 이한이 검진 날이 되면 일하던 중간에 밥 먹을 시간을 우리와 같이 소아과 가는 데 쓴다. 이한이는 주사 맞고 울고 가방은 무겁고 이서는 아기처럼 굴고 싶어 안아달라고 하면 나는 혼자 어깨도 빠지고 정신도 빠져 집에 돌아올 텐데 남편이 달려 나온 덕에 가볍게 다녀온다. 정작 남편은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 길로 일하러 돌아간다. 운전은 정말 쓰러질 것 같은 게 아니면 늘 남편이 하는데 남편은옆에서 곯아떨어져 이리저리 빙빙 도는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운전한다. 내가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아무 말도 없이 사들고 오고 무엇보다 즐겁고 맛있는 자리는 어디든 온 가족이 함께 간다.
플로리다로 이사 온 뒤에 우리는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사 오고 일주일 만에 남편은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 출근에 집에 돌아와서도 새로운 것들을 해내느라 바빴고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갈 곳이 없는데 한 대뿐인 차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아이들과 집에 남아 하루를 보냈다. 교회에서 빌려준 숙소가 넓어 처음에는 아이들이 지겨울 새도 없이 신나게 놀았다. 몇 주 지나자 아이들은 지루해했고 특히 이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빠졌다. 짜증이 많아지고 자주 떼를 쓰며 울었다. 만 네 살이 넘은 아이가 화장실에도 쫓아 들어오고 밤에도 몇 번씩 깨서 울었다. 집은 적막했고 커뮤니티 안의 놀이터에 나가도 사람이 없었다. 어딜 가도 우리밖에 없고 우리 소리만 들렸다. 기운이 빠질 때면 "놀이터 우리 거다! 신난다!"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실망하던 이서도 "좋아!"하고 달려갔다. 하지만 자꾸만 처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꼬리처럼 쫓아다니며 나만 바라보는 이서에게 자주 화가 났다. 새벽에도 몇 번씩 아이를 달래 재우느라 잠도 부족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소리치기도 하고 마주 보고 울기도 했다.
1월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은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왈칵 났다.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힘들어하는 이서가 안타까웠지만 그 모든 짜증을 받아주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의 이서는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조금 위험한 것 같다고, 아이들과 떨어져서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사실 서프라이즈로 주려 했다며 뮤지컬 '맘마미아'를 예매해 뒀다고 했다. 그전 주에 길을 지나다 우연히 공연장 앞을 지났는데 남편은 '맘마미아'를 한다며 말했고 나는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라고 가볍게 말했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았는지 우리 형편에 너무 큰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한 거다. 아직 일주일이 남았지만 그 문자를 보자마자 마음이 조금 녹았다. 드디어 예매한 날이 됐고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엄마가 저녁에는 외출할 거라고 알려줬는데 나갈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서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나를 쫓아다녔다. 이서를 안아주고 달래느라 출발이 늦어져 공연 직전에 헐떡이며 들어섰다.
'맘마미아'는 십여 년 전에 영화로 봤다. 노래를 다 외울 정도로 반복해 보면서도 엄마와 딸 이야기에 몇 번이나 울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뮤지컬은 그 백 배로 더 좋았다. 무대는 아주 단순하고 배우들 힘으로 극을 만드는 작품이었는데 중년 여자 배우들이 유연하게 춤추고 공연장이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도 용기와 생기가 돌았다. 1막에서 소피가 아빠 후보 세 사람과 'Thank you for the music'을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엄마는 말했죠. 저는 말하기 전부터 노래하고 걷기 전부터 춤을 췄다고요'라고 노래하는 소피를 보며 나도, 이서도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이 그 자리를 어떤 마음으로 사줬을지 알아서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지금 우리한테 백 불이 얼마나 큰돈인데. 지금 남편은 얼마나 바쁜데. 매일 밤까지 일하고 새벽 출근하느라 대여섯 시간밖에 못 자면서 오늘 하루 애들 씻기고 재우겠다고 나를 보낸 거다. 사람이 모인 곳에 가니 지금 우리 삶이 팍팍해서 슬프기만 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우리도 지금은 그려지지 않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언젠가 손 잡고 함께 온 저 중년 부부들처럼 이런 곳도 같이 올 수 있겠지. 지금은 그려지지 않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나를 찾지 않는 때가 올 테고 함께하고 싶어도 등만 보이는 때도 있겠지. 양 옆에 앉은 중년 부부들이 깔깔대며 웃는데 나는 같이 웃으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며칠 전에 이서, 이한이와 셋이 앉아 점심을 먹는데 이서는 여느 때처럼 엄마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엄마, 이 브로콜리도 대회 나가야겠는데? 아무래도 밥 대회도 나가고 고기 대회도 나가야겠는데?"라며 신나게 종알거렸다. 그러면 나는 감동받았다며 둘이 한참을 서로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떠든다. 이한이는 곁에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엄마, 엄마, 다정하게 부른다. 이서는 갑자기 자리에 없는 아빠를 말한다. "아마 아빠는 우리가 맛있다고 하면 그냥 음, 그럴 거야." 나는 크게 웃었다. "맞아, 아빠는 맛있어도 많이 말하지 않지?" 내가 말하자 이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는 왜 맛있다고 안 하고 고개만 끄덕이지?" 이서 물음에 나는 그저 아빠는 쑥스러워서 그럴 거라고 했다. 이서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빠는 맛있으면 말은 안 해도 남기지 않고 삭삭 긁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와구와구 먹는다고 하니 이서가 웃었다. 이서도 조금 걸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아빠가 엄마를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서와 이한이를 얼마나 부지런히 행동으로, 시간으로 사랑하는지. 아무리 가난하고 다음 달이 걱정돼도 이서와 이한이에게 아끼지 않고 얼마나 좋은 것을 주는지. 물론 아빠도 시간이 지나며 지금보다 더 다정해지길 기대해 주자.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정하게, 부지런히 사랑하자. 어떤 방식으로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