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
남자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난하고 순해빠진 그는 독특하고 사회적으로는 무능한 적은 수의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아내는 그를 떠났고 그에게 남은 것은 파란 대문의 아파트와 괴짜 룸메이트뿐이다. 그런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 그는 금세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그에게 상처를 준다. 그는 그녀에게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 그녀를 밀어내기로 한다.
여자는 유명한 인기 배우다. 남자든 여자든 그녀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그녀는 기품 있는 여왕이 되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술자리에서 가볍게 입에 올리는 창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아무렇지 않게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들을 당황시킨다. 오랜 시간 유명세에 시달려온 그녀는 강하고 당차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어린 소녀이기도 하다.
영화 <노팅힐>을 처음 봤을 때 내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어린 나에게 이 영화는 남자 버전의 로망 채우기, '신데렐라'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에 동경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으로 여기던 여배우 애나가 한 남자의 인생에 들어와 그의 연인이 된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사랑에 실패한 경험은 많고, 가진 거라곤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작은 책방뿐이다. 화려한 말발을 가진 것도 아니다.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뒤에 여주인공의 이름인 애나는 기억나도 그의 이름은 도무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정도였다. 그간 그녀가 사랑해왔던 나쁜 남자 스타일도 아니건만, 그녀는 그런 그의 심심한 매력에 푹 빠진다. 아무튼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스물다섯이 된 어느 밤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이 영화가 생각났다. 스물다섯의 여자가 보는 <노팅힐>은 스무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남자는 여자가 남긴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 그 매력이 조금씩 느껴졌다. 아래로 축 늘어진 눈꼬리와 바보처럼 웃을 때면 얼굴 가득 지는 주름. 느릿느릿한 말투와 긴장할 때면 엉망이 되는 어휘력도. 모두 그녀에게 푹 빠졌기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이미 남자라면 수없이 만나봤고 알만큼 알고 데일만큼 데인 애나도 그 앞에서는 순수해진다. 아니, 그는 그녀의 안에 언제나 들어있던 순수함을 알아본 유일한 남자일 수도 있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사랑을 구하는 어린 소녀가 된다.
애나는 그의 앞에서 있는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신나게 웃기도 하고 담을 넘기도 한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화관에 함께 가기도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뒤라도 그에게라면 용기를 내어 부탁할 수 있다. 나를 다시 사랑해달라고.
영화를 새벽까지 보고 있자니 비까지 내렸다. 영화를 다 본 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음악 사이로 빗소리가 들렸다.
아마 애나는 행복할 것이다. 화려한 언변과 이벤트, 자유로운 관계에 질렸던 애나에게 그는 평안한 집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그것을 받아들이던 아니던 언제든 덤덤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으며 상대는 그 마음을 배려한다. 이런 덤덤하고 배려하는 관계란 어떤 것일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 밤에 한참을 생각했다.
영화의 제목인 '노팅힐'은 런던의 한 장소의 이름이다. 이제 노팅힐은 나에게 '사랑의 곳'의 느낌이다. 더 이상 그 남자는 심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애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변화해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개성 강하고 능력 좋고 멋진 사람은 많지만, '함께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앞서 선택하며 자신의 개성을 내려놓고 변화해갈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화려하게 꽃이 피지는 않지만 깊은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으며 쉬어갈 가지를 내어주는 사람.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방법을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떠나갔던 아내와 달리 그의 순수함과 착한 마음을 알아주는 애나도 사랑받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분명히 애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 누군가 죽음 앞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그 벤치에 누워 이제는 세 사람의 행복을 누린다.
참, 그의 이름은 '윌리엄 태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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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색감이 고운 그의 옷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