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
무시당하기 일쑤인 빨간 머리에 빼빼 마르고 구부정한 몸, 게다가 어딘가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찡그린 얼굴. 주인공 팀은 끝내주는 능력을 갖게 돼도 하고 싶은 건 '연애'인, 한마디로 여자들에게는 도통 인기가 없는 남자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가문의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다. 이 집안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방법도 어찌나 간단한지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이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고 눈을 감으면 된다. 이제 이 엄청난 능력으로 무얼 하고 싶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팀은 대답한다. "연애요."
그리고 팀은 그럭저럭 시답잖은 연애도 아닌, 진짜 사랑을 한다.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메리'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의 관계는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닭살 돋는 멘트는 절대 금물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그가 가족들에게 더욱 사랑받기를 원한다. 메리는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때로 성질을 부린다고 말하지만, 메리는 팀의 매력적인 아내가 되고 팀은 메리의 변덕에도 웃는 얼굴로 기다린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주변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고는 사랑에 관련된 영화일 거라 기대하며 영화를 보지만, 영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주인공의 사랑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다 보고 난 뒤에는 인생과 제목 그대로 '시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지금까지 벌써 열 손가락을 다 쓰고도 부족할 만큼 본 지금, 나에게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팀의 아버지는 영문학 교수다.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 시간 이동 능력을 책을 읽는 데에 썼다. 그의 아버지는 이 능력을 돈을 벌기 위해 쓰고 가족들과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 팀이 성인이 되던 날, 시간 여행으로 돈을 왕창 벌고 싶다는 팀에게 그건 인생을 망치는 길이라 말한다. 팀이 일하지 않는 것은 행복할 것 같다고 받아치자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고 가르친다. 그는 아들에게만 이러한 방식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그는 그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50세에 은퇴했다. 유쾌하고 다정한 그는 늘 시시한 농담과 유쾌한 몸짓으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렇기에 팀과 메리의 결혼식에서 그가 한 축사는 정말로 힘 있게 들린다. 그는 '결국 모든 이의 마지막은 비슷하기에 따뜻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내 아들 팀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하고. 그런 그의 아버지가 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며느리가 되는 메리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지도, 이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팀에게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메리는 결혼식날 내린 장대비에 쫄딱 젖어도 웃을 수 있는 여자이며 평생을 지켜본 아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뒤에 숨겨진 의미로 메리를 축하하고 기쁘게 한다.
아버지는 시간 이동으로 책을 팠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가 아들 팀과 보낸 시간 중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돌아가 반복해서 보내며 그 관계를 공들여 다듬었으리라 생각한다. 혹은 처음에는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을 후회하며 돌아가 아들과 함께 있어줬을지도 모른다. 그는 시간을 이동해서 엄청난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실수를 고치고 더 나은 추억을 남긴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꽤 멋지게 축사한 뒤에도 아무래도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시간을 돌려 다시 한번 시도한다.
아버지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뻐한다. 팀은 아버지와 오랜 시간 앉아 대화를 하고 땀 흘리며 탁구를 치고 취향을 공유하며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그가 알려준 조언을 거부감 없이 따른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으로 인생의 중요한 비밀들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산책에서 팀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말한다. 고마워요 아빠. 담백한 그 말과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 온 수많은 대화와 추억이 느껴졌다.
팀은 아버지의 말대로 따뜻한 사람이다. 남을 도와주려 시간을 돌렸다가 현재의 시간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여자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자 그는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 도움을 줬던 이의 행복을 걷어내는 것이 아닌, 그저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트 모스 전시회에 몇 날 며칠을 앉아 기다려 그녀를 다시 만난다. 여동생의 엉망인 삶을 바꿔보려 고군분투하고 자신을 홀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심한 말 한 번 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와줬다 해서 젠체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과 시간을 들여 노력한다. 팀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잃는 것이 있더라도 늘 먼저 남을 돕고 다시 힘 들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간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반복된다 해서 지루해하지 않고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그는 아버지가 알려준 삶의 빛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더욱 발전시켜 간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의 아버지가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진심으로 아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없는 인생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독특한 삼촌이나 자신의 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아마 팀은 자신이 봐온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고도 매일을 최고의 날로 누릴 줄 아는 최고로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