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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11. 2019

9. 적게 가진 우리 (上)



시골집으로 가기 전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연구원이나 교수들이 모여 살았다. 부모들은 돈도 있고 학구열도 있어서 외국에 살다 온 아이들도 많고 선행학습도 꽤나 경쟁적으로 하곤 했다. 나와 병희는 시골집으로 이사간 후에도 여전히 그 동네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빠가 사업을 하던 때에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큰 돈이 돌면서 우리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다. 진짜 돈은 아니어도 신용카드와 어음, 대출과 이자로 신기루같은 돈이 떠돌던 때였다. 그때 아빠와 엄마는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고, 나는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피아노와 가야금, 무용과 수영을 배우며 지냈다. 아빠와 엄마는 나와 병희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었지만 원하는 것들을 선물받았다.


IMF라 부르는 시대를 지나 열심히 버텨왔지만 아빠의 사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가족을 위해 보증을 서주기도 하고, 가족들이 아빠를 위해 빚을 내기도 했다. 결국 돌려받아야 할 돈은 받지 못했고 갚아야 할 돈만 많아졌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아빠의 지갑을 열었는데 20년이 넘는 동안 돌려받지 못한 어음 두 장이 여전히 들어있었다. 되돌릴 수 없고 펴지지 않는 아빠의 기억처럼 아주 꼬깃꼬깃 접혀 닳아 있었다.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우리는 시골집으로 이사했고 학교는 멀어졌다. 우리가 갖고 있는 차는 엘란트라였는데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타던 차였다. 그 낡은 차는 엄마가 출퇴근을 하며 탔고 아침마다 아빠는 사업장에서 쓰는 트럭으로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갔다. 학교 앞에 나를 내려주려면 아빠가 다시 골목을 빠져나가야 해서 회사에 가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괜찮다고 해도 아빠는 언제나 나를 많이 걷지 않게 하려고 교문 바로 옆에 내려주곤 했다. 길에서 교문으로 모이는 아이들 중에 트럭에서 내리는 나를 주시해서 보는 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사람이 없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안 그래도 내가 입은 물려입은 교복의 자켓이 너무 커서 아빠 정장을 빌려입고 온 것 같았다. 게다가 트럭을 타고 학교에 오는 아이는 없었다. 십오년 전인데도 외제차가 심심찮게 보이는 동네였다.


그 후로 나는 아빠에게 조금씩 교문과 떨어진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교문 건너편의 문구점에 들러야 한다며 골목에 내리기도 했고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며 그전에 우리가 살던 아파트 정문에 내리기도 했다. 그 두 곳 다 내 걸음으로 오 분이면 학교에 도착하는 곳이었다. 아빠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있다가 나는 홀로 학교로 걸어가곤 했다. 어떤 때는 진짜로 문구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내가 트럭을 타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친구였다.


아빠는 어느순간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 날 아파트 옆 큰 길가에 아빠는 학생들이 거의 없는 정류장에 나를 내려줬다. 거기에서도 역시 학교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트럭에서 내리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은 회사에 늦을 것 같아?" 아빠는 수줍게 웃었다. "다른 친구들이 보면 좀 그러니까." 나는 얼른 "괜찮은데,"라고 말했다. 아빠는 아빠의 회사 이름이 적힌 푸른 점퍼를 입고 밝게 웃었다. 나는 내가 품었던 마음이 부끄러워 웃을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숨기며 나는 걷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가 잘 가는지 잠시 지켜보다가 출발했다. 트럭이 내 곁을 지나갈 때 아빠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학교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나는 내 코끼리 옷 같은 자켓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는 트럭이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가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여름, 엄마와 병희는 잠들었고 나는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있었다. 그 날 아빠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온 아빠는 내 침대에 앉았다. 나는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는데 눈은 촉촉했다.


"아빠 사업 정리하기로 했다."

아빠가 말했다.

"근데. 걱정하지마. 잘 될거야."

아빠는 늘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오늘은 너무 속상해서. 좀 마셨어."

아빠의 눈은 점점 빨개졌다. 점점 눈물이 고였다.

"너무 속상하다."

아빠는 더이상 나를 보지 못했다. 아빠는 바닥을 봤다. 엉엉 울고 싶었을거다. 아빠는 잘 울지 않았는데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 해 벌써 두번째였다. 그 해 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할아버지를 담은 관이 땅 속 깊이 내려지는 것을 바라보며 울었다. 나는 의자를 끌고 아빠 가까이에 앉아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공부 더 열심히 할게."

아빠는 나를 잠시 보고는 다시 바닥을 봤다.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젊은 시절이 담긴 십 삼년간의 사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빠는 그 후로 오랜 시간 무기력과 싸우며 깊은 고민과 상심에 빠졌다. 우리도 아빠의 인생을 따라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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