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찍어두고(완)

003. 슬픔을 자박자박 걷다 보면 연민이 한 움큼 찍힌다.

by 공글

슬픔을 자박자박 걷다 보면 연민이 한 움큼 찍힌다.


나는 자책감이 어릴 때부터 조금 심한 편이었다. '자책감' 정말 필요하면서도 스스로를 갉아먹는 벌레였다. 자책감은 내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여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나를 주저앉히는 존재였다.이런 자책감의 원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남을 탓해서는 내가 처해져 있는 이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자 하는 생각도 한 몫을 했고 모태부터 기독교를 믿게 되며 종교적인 이유에 의한 자책감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 주변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일들이 내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 있지만, 내가 간접적인 관련이 있고 내가 어떤 방법으로나 방향으로든지 잘 했으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이런 마인드는 나를 좀 먹어갔다. 내가 대응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한 걱정이 앞을 가리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나가기에는 추진력이 부족한 그 상황 자체에 대해서도 나는 나의 유약함을 자책하였다. 슬픈 일이었다. 그렇게 슬픔에 빠져 있다 보면 자기 연민은 더욱 깊게 패였다. 지금까지도 내가 온전히 자책감을 버리며 자기 연민에서 나왔다고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햇볕이 떠오르는 아침이 너무나도 좋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 할 때(가령 청소 등의 사소한 일이다.) 기분이 좋았다. 인디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깊은 사색감에 빠져보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서 못 부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낙관을 꿈뻑꿈뻑 찍어냈다. 물론 이렇게 희망적으로 하루가 마무리되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저녁에는 다시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오래 찾아올 때도 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흔한 일반인들의 일요일 저녁을 생각하면 주말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우울에 잠기지 않는가? 즐거웠던 과거를 생각하며 더 깊은 아쉬움에 빠져든 것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일은 또 내일대로 아침이 밝게 올 것이고 나는 밥을 먹어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문제들도 아니고 그저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다는 마음을 가지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지나가더라. 그전에는 제일 싫어하는 마인드 중 하나가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무책임한 마인드인데, 마음을 먹으니 한결 쉽더라. 오히려 생각이 많을 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 스물스물 찾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온 사방에서 날라오는 이야기들을 조금은 무시하며, 조금은 '뭐, 어때?' 라는 마인드를 가지니 한결 가벼움이 나를 감쌌다.




슬픔을 자박자박 걷다보면

연민이 한 움큼 찍힌다.


끈적한 대지에서

힘껏 들어 올리는 낙관


왼편의 우울은

더 깊에 패였다.


어데 둘 곳 몰라

공중에 떠버린 오른발


온 데서 날아오는 속삭임에

스르르 넘어져버렸다.


memo: 가끔은 어두운 날도 있었습니다 :) 주저앉아 있기에는 너무 날씨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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