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태 Apr 23. 2019

가난이 풍요를 가져다 주지는 않겠지만

 요즘 비를 맞는 일이 많습니다. 비가 오는지 몰랐거나 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도 정작 집을 나설 때 우산을 챙기는 걸 잊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비를 맞는 일이 좋기는 하지만 종종 나의 어리숙함을 탓하곤 합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에 비가 온다며 사람들에게 꼭 우산을 챙기라 말하고는 정작 제가 우산을 챙기지 못하고 나섰던, 하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그냥 비를 맞을까도 했지만 다음날에 중요한 일이 있어 감기라도 걸리면 낭패였기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택시를 타 돈이나 우산을 사는 돈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시트를 배릴 정도로 젖지는 않았습니다.  


 "우산을 못 챙기셨나 봐요?"


 기사님의 말에 저는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요즘 비를 자주 맞는다는 이야기와  사람들한테 우산을 챙기라고 말을 해놓고는 정작 내가 놓고 왔다는 이야기,  요즘 정신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돈을 쓰고 있다고 말입니다. 기사님은 뭐 그럴 수도 있죠라며 웃었습니다. 아 말하는 걸 잊었는데 기사님은 남자분이었습니다.

 

 "저는 퇴근 준비 중이에요. 저는 7시까지만 일해요. 이 시간만 되면 일부로 집이랑 가까운 쪽으로 가요. 그리고 손님이 없기를 바라죠."


  이제 막 6시가 넘어가고 있었 시간이었습니다. 벌써 집에 갈 준비를 한다는 말과 손님이 없길 바란다는 기사님의 말너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제게 익숙한 택시의 공간은 늘 누군가의 한탄이나 푸념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손님 목적지가 제 집이랑 가까우니까 너무 좋네요"


 기사님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근무 시간이 12시간인데 기사님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말이 12시간이지 11시쯤 되면 회사 들어가서 점심 먹고 두세 시간은 그냥 쉬다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사람은요. 뭐든 적당히 해야 해요. 운전 많이 해서 손님 몇 명 더 태운다고 좋지 않거든요. 그게 다 본인한테 독으로 돌아와요.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벌써 제가 목표했던 오늘치 돈은 벌었어요. 그럼 저는 할 일 다 한 거죠."

  

 기사님은 오늘 벌었던 금액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뭔가 이 정도 금액으로 괜찮을까 싶었던 금액이었습니다.

  

 "사실 적당히, 적당히 그러는데 적당히라는 건 어려워요. 어디까지가 적당한 건지 모르거든요. 저는 적당하다 보다는 조금 부족하다는 말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적당히 산다기보다는 조금 부족하게 살고 있는 거예요."


 기사님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가난하지만 마음은 여유롭다고 하셨습니다. 욕심 내지 않고 더 바라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저는 너무도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적당하다는 게 좋다는 건 알고는 있지만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그 적당한 선을 무심코 넘어버리고 맙니다. 적당하게 벌고, 적당하게 먹고, 적당하게 쓰고 적당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다면, 우리는 이토록 불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언제나 더 원했고 더 바랐기에 모든 것들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 가난하게 살겠다 다짐해보고자 합니다. 이 가난은 풍요를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많은 것들을 얻어내고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보았던 기사님의 웃음과 잃었던 순수 같은 것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우리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