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태 May 17. 2019

영영 나의 속도를  잃어버려도 괜찮으니

 하늘이 저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텅 빈 하늘에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씩 불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나는, 노을이 지는 하늘과 하-얀 가로등 불빛과 도시의 이런저런 소음들을 마주하며 걸어볼까 합니다. 어디선가 다정히 불어오는 바람은 오늘을 더욱 걷기 좋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걷기 좋은 날, 혼자 걸어도 좋지만 당신과 함께 걷는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걸음은 늘 빨라서, 걷다 보면 무언가 하나씩 놓치고 맙니다. 나의 어설픔과 어리숙함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혼자 걷고 있으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과 이런저런 걱정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오곤 합니다. 어쩌면 나의 걸음이 늘 빨랐던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같이 걸었으면 합니다. 나의 보폭과 당신의 보폭을 맞추고 말입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서로에게 적당한 속도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시시한 농담도 괜찮고 사소한 이야기도 괜찮고 가끔 무거운 이야기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했던 이야기는 그 자리에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추억으로 가득한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겁니다. 언제가 걸어가다 추억을 마주하게 되면 피식하고 웃음 지을 겁니다. 적어도 그 순간은 저에게 사소한 행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기적인 이야기지만 저의 행복을 쌓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추억과 행복을 여기저기 쌓아두고 나면 저는 혼자라도 천천히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날이 좋습니다. 이제 하늘은 완전히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거리는 어느덧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이 모든 순간들을 마주하며 언젠가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걸음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나의 속도가 어느덧 좋아졌습니다. 영영 나의 속도를 잃어버려도 괜찮으니 당신과 많은 날들을 걸어내고 싶습니다. 오늘도 당신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난이 풍요를 가져다 주지는 않겠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