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것

결혼식 그리고 엄마

by rainy

30대에 들어서고 예고 없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때는 만나는 사람도 없었던 시기였으니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생활 자체에 대한 니즈가 생겨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삶이 완전히 포개어지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과, 일상을 함께 보내며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동시에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1. 이제 막 시작임을 알리는 형식일 뿐인데 그 시작부터가 필요 이상의 부담스러운 요소들이 잔뜩 버무려져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2. 웨딩 시장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결혼식 비용이 나에게는 너무 높다고 느껴지는데, 과연 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차라리 그 돈을 집에 보태고 싶다.

3.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싫다.

4. 알아봐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고들 하던데 생각만 해도 귀찮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결혼식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결혼식이 하기 싫었다. 결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은 30대를 지나서였지만,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20대 초반부터 하던 생각이었으니, 오랜 시간 유일하게 내가 결혼에 대해 가져온 로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결혼식 없는 결혼.


또 나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1. 경제적인 이유와 희생정신 없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삶이었다. 설령 앞으로는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이제 막 여유가 생긴 건데 다시 또 그 굴레로 돌아가야 하나?

2. 살기 좋은 세상인지 잘 모르겠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태어나서 좋다고 느낄 수 있을지,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3.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는 게 무섭다. 그만큼 삶에 미련이 생기고 삶이 무거워질 것만 같아서.


유아적인 사고에 머물러있다고 누군가 비난한대도 나 역시 맞는 말이라고 격하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그런 것을 어찌하나. 내가 하기 싫은 것 두 가지,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분은 결혼 상대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했으면서도 마음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아이는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말하고 시작한 연애도 결국 이것이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내 인생을 바꾸느니 상대방을 영원히 보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그 편이 훨씬 더 쉬웠으니까.


그랬던 내가 그를 만나고, 내 인생을 바꾸기로 한다. 그가 내 남편이라면, 그가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살면서 처음으로 들었던 것이다. 아직 무엇도 시작 안 했는데 그가 아빠일 누군가가 벌써 부러웠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좋은 엄마가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에 없던 용기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안 낳으면 안 낳지, 낳는다면 부족한 부분은 공부를 하고 또 해서라도 가능한 한 좋은 엄마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아이 있는 삶을 원했고, 나는 그의 행복을 원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를 잃을 수 없었다. 그건 내 인생에서 하기 싫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것이었으니까. 나도 내가 이렇게 바뀔 수 있을 줄 정말 몰랐다.


나는 어쩌면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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