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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Oct 25. 2019

정말 더 익혀 주실 건가요?

이탈리아 리조또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바람도 쐴 겸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걸었다. 미술관에서 베키오 다리를 지나 아르노 강 건너편의 피티 궁전까지 연결되는 회랑은 메디치 가문 대공의 ‘전용 출퇴근로’였던 셈인데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회랑 역시도 예술작품들로 잘 꾸며 놓았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베키오 다리는 (여전히) 보석상으로 가득했다.

     베키오 다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예전에 왔었던 기억이 잘 나지 않았었는데 길을 건너 다리 위에 올라서자마자 펼쳐지는 보석상들을 보며 ‘아, 맞다 여기 전혀 살 일이 없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던 보석상이 많았었지’라고 기억이 살아났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으로 본인 위주로 유리하게 이루어져 있어 쉽게 왜곡되거나 잊히기 쉽다. 시간이 지난 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기억할 이탈리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투어가 끝날 무렵 피렌체의 맛집을 추천해 주었는데 봉골레 스파게티에 미련이 남아 따로 물어도 해보았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집이 없다고 했다. (가이드님이 맛집을 잘 알기에는 너무 날씬했다.) 해산물 요리를 하는 곳에 조개가 없겠느냐고 생각하며 맛집 목록 중에 Fishing Lab Alle Murate를 선택했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은 먹보의 마음을 잘 아는지 하프 메뉴 주문도 가능하고 새우도 마리 수로 구워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마지막 저녁식사인 만큼 잔뜩 시켜보고 싶지만 (입 짧은) 엄마와 (뭐든 잘 먹지만 양은 보통인)나 둘 뿐인지라 부푼 마음을 잘 다독이며 신중히 메뉴를 정독했다. 로제 와인과 구운 새우 2마리, 해산물 리조또, 도미 소금 찜(Sea-Bream in Salt Crust)을 주문했다.

     새우는 가격이 좀 비싸다 싶었는데 이렇게 간편하게 가운데 부분만 껍질을 까주다니 정말 사랑스러운 레스토랑이다 싶었다. 이것 보세요!!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껍질을 까서 주는 거 보셨죠? 새우는 껍질째 먹는다고 저에게 가르쳐 왔던 분들 이것 좀 보세요!! 소리 높여 외치고 싶도록 기뻤다.


     소금에 묻어서 구운 생선도 멋진 모습으로 나왔다. 유럽은 항상 이렇게 세팅된 모습을 보여주고서 먹기 편하게 살만 발라서 준다. (지느러미 쪽이나 배쪽의 살들을 조금 가차 없이 같이 버려버리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 생선 뼈 고르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거나, 대접받는 느낌보다는 버리는 부분이 없는 게 중요한 실속파인 경우는 그냥 달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해산물 리조또는 도전적인 시도였는데 역시나 쌀알이-쌀밥을 기준으로-50%정도 익은 상태로 나왔다. (다시 말해 거의 생쌀.) 파스타는 한국에서도 알 덴테로 익혀주는 레스토랑이 많아서 이제 제법 익숙해졌고 푹 퍼진 면보다는 선호하게 되었는데 ‘쌀’에서는 그 식감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쌀을 밥으로 지어먹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먹다 보면 익숙해지길 바라면서 듬뿍 든 해산물을 위안 삼아 꼭꼭 씹어먹어 보았지만 이건 쉽게 적응될 맛이 아니었다.

     결국 웨이터를 불렀다. 미안함을 가득 담아 “(이게 리조또라는건 알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조금 더 익혀 주겠니?”라고 물었다. 너무나도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고 그릇을 가져갔다.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나고 내가 빼먹은 해산물도 다시 가득 넣어서 ‘더 익힌’ 리조또가 나왔다. (고두밥이 될 때까지 익히는 건 이들에게 재앙과 같은 일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한결 나아진 리조또를 (사실은 주로 해산물을) 와구와구 퍼먹었다.


     13년 전 이탈리아 여행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은 ‘짜고 또 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주문한 음식들은 전혀 짜지 않았다. 그때는 어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기분 좋게 요구하고 얻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짜도 그냥 먹고 (물 마시고), 덜 익은 것 같아도 그냥 먹었던 것 같다(꼭꼭 씹어서).


     이제는 레스토랑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는 트립어드바이저, 구글맵 같은 웹사이트에 축적된 빅데이터도 믿을만하고, 나도 경험이 쌓여서 주문을 할 때 추가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어쩌면 이탈리아에 전 세계사람들이 많이 와서 식사를 하다 보니 음식이 세계 평준화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도움으로 이제는 맛있는 현지 음식을 즐기는 일이 결연한 도전 정신까지 탑재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으니 많이 즐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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