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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y 12. 2019

고대도시의 생생한 흔적

폼페이(Pompeii)

     버스를 타고 로마를 벗어나자 산과 들이 펼쳐진다. 그 경치가 사뭇 우리나라 풍광과 비슷하다. 스페인에서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평야에 드문드문 심어진 올리브 나무가 너무나도 이색적이었다면 로마에서 폼페이(Pompeii)로 가는 길의 풍경은 한국의 시골 풍경이 연상되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다. 다들 폼페이 유적지를 보러 가는 것인지 이른 아침부터 휴게소는 북적거린다. 휴게소의 카푸치노조차 꽤나 훌륭하다. 이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밀라노에 스타벅스가 들어오는 것을 농담거리로 삼는구나 싶었다.


     고대도시 로마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문외한인 내 눈에는 보존상태가 그리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건축물을 보는 것에 어떤 경외감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체감이 없는 무식한 자의 첫 소감이니 노여워마시길) 가이드가 보여주는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보여주면 남아있는 건물 뼈대에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공중 화장실이 있었고 목욕탕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그곳이 화장실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항구에서 마을에 들어오면 몸을 씻는 공중목욕탕이 있고 마을회관 같은 기능을 했을 듯한 중심광장(포럼, forum)이 있다. 마을회관이라고 했지만 남아있는 기둥으로 그 크기를 추측해 볼 때 대규모 공연장 급이다. 그 뒤로 아파트 단지 같은 주거지역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중목욕탕을 둘러보고 나와 빵집 터에 서서 '목욕 후에는 역시 바나나우유지!'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당시 사람들의 삶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럼을 전 세계 관광객과 거닐고 집터 기둥들이 빼곡한 그 당시 돌길 위를 걷노라니 마치 그 옛날 폼페이를 누비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저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산을 바라보니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폼페이는 그대로 파묻혀버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물들의 기둥들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봄이 되면 피었을 붉은 개양귀비 꽃이 유독 더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삶도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도 다 시간이 지나면 덧없이 사라지고 결국 자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왠지 마음이 처연해진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의기소침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삶에 정해진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함으로써 현재 주어진 짧은 생의 소중함을 알고 그 순간을 더 열정적으로 살기 위한 다짐이었듯이 폼페이의 개양귀비를 떠올리면 유한해서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자각하고 매일매일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4월 말인데도 햇살은 한여름처럼 따갑다. 유적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가이드를 따라 포인트만 보는데도 슬슬 체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가이드 없이 안내서만 보고 돌아다녔다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가 루브르 박물관에 갔는데 모나리자를 못 보고 나왔다는 이야기처럼) 그래도 모자이크 그림이 화려한 귀족들의 집이나 다른 이유로 유명하다는 환락가를 보지 못한 것이 아주 조금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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