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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y 19. 2019

레몬 셔벗

놀라운! 충격적인!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폼페이 유적지를 나오니 아말피 해안도로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아말피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수의 관광객이 타지 운전자의 버스에 가득 타고 해안도로를 누비니 큰 사고도 나고 해서 지역 주민이 운전하는 등록된 지역 버스만 다닐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여행사들이 벌금을 내도 그냥 다니자 운전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강력한 제재까지 한다고 하니 놀라웠다. 관광지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주차가 불편하고 먹을만한 게 없으면 방문자가 준다고 걱정하는 것이 보통의 관광지 관리자의 생각인데 가지고 있는 자연이 너무 대단하다 보니 지역주민의 일자리까지 규칙을 만들어 창출할 수 있구나 싶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막상 엄청 좁고 끝없이 이어지는 커브 길을 보니 작은 버스로 갈아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너를 돌면 차창 가득 바다만 들어오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그때마다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림 같은 해안선의 절경에 빠졌다가 깊은 바다 색상에 감탄하기 바쁘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보이는 절경에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가파른 절벽에 빼곡한 집들이 인상적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레몬이 자라는 척박한 땅 밖에 없는 이 남부에서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들었다. 다시 절벽 가득히 차곡차곡 지어진 집들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내가 감탄하는 저 바다가 그들에게는 세상의 끝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더 버겁게 만들고 자신의 한계를 더 느끼게 하는 아득하고 지긋지긋한 존재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곳을 나는 여행객으로 가서 잠시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가장 쉽게 하는 말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이니까) 여행지에서는 무엇이든 금방 좋아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쉽게 동경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은 숨쉬기 힘들 정도로 버겁고 지쳤다가도 또 어느 날은 갑자기 행복이 가득하다거나 성취감으로 뿌듯한 날도 있을 것이다.


     포지타노(Positano)의 절경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과일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과일들이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저 멀리서도 오렌지 향이 느껴지고 레몬은 사람 얼굴 크기만 하다. 이곳의 햇살이 이런 과일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어 놀랐다. 선물처럼 오렌지를 하나씩 나눠주어서 상큼한 향을 가득 맡았다.(가이드님 센스쟁이!) 하얀 유람선이 가득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얼굴을 다 가려도 즐겁기만 하다.


     마을을 거쳐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돌며 걸어 내려간다.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며 한숨을 돌린다. 내가 이곳에 산다고 상상하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물 같은 생필품은 어떻게 사다 나르지?' 주민들의 고통이 내 다리로 급격히 전해져 온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계단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경사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가 눈에 들어오며 살짝 현기증이 인다. 그렇게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오니 이제 내리막이 펼쳐진다.


     다리를 브레이크 삼아 무릎에 부담을 느끼며 걷다가도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는 레스토랑과 레몬 캔디, 향초, 비누를 파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레몬즙이 가득 든 동그란 사탕을 입에 넣는다. 달콤한 맛도 잠시 새콤한 레몬즙이 그대로 흘러나온다. 어렸을 때 먹었던 '아이셔'캔디의 고급 버전이다. 새콤한 그 맛에 중독되어 얼마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상점이 나타나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금방 바다에 도착했다. 괜스레 마음이 설레어서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바닷물은 아직 많이 차가워서 시간적 여유가 없어 바닷가에서 놀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이 달래 졌다.


     선착장에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에 앉아 레몬 셔벗을 주문한다.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주문하긴 했지만 '나는 원래 셔벗은 안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레몬 속을 파내고 그것을 그릇 삼아 셔벗을 가득 담아 놓은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레몬 뚜껑을 열고 레몬 셔벗을 맛본다. 정말 놀라운 맛이다. 내가 생각한 레몬 셔벗의 맛이 아니다. 마냥 시기만 할 것 같았는데 새콤하고 달콤하면서도 뭔가 이제까지 먹어본 적 없는 신선한 충격이 있는 맛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지 않고서 나의 호불호를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하게 하는 레몬 셔벗이었다. 지금도 왠지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그 레몬 셔벗을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은데' 하고 생각나는 존재가 되었다.


      그곳의 레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곳의 태양, 토양, 바람,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척박한 땅에서의 노력이 모두 합쳐져 만들어진 특별함이었다. 그 모든 것의 복합체인 레몬을 (그 레몬 셔벗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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