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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n 13. 2019

다시 오고 싶은 머물러 보고 싶은 마을

포지타노(Positano)

     며칠은 더 머무르고 싶은 포지타노를 뒤로하고 살레르노로 가는 선박에 탑승했다. 내부 선실에는 바람을 피하며 앉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계시고 2층이나 배의 뒷부분에는 포지타노의 전경을 조금이나마 더 눈에 담고 싶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바다 위로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가 점점 선착장에서 멀어진다. 포지타노의 절벽과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 마을에 이렇게 잠시 스치듯 떠나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 바닷물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계절에 꼭 다시 아와 이 곳에서 머무르며 마을을 거닐고, 수영을 하고, 레몬 셔벗을 실컷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산물 튀김에 맥주를 마시며 에메랄드 빛 바다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해질 무렵의 경치까지 느긋이 즐기고 난 뒤 해가 지면 언덕을 걸어올라 숙소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해 본다. 느지막한 아침에 눈을 떠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절벽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하모니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 광경이 반복되어 나의 눈에 익숙해져서 마치 나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기억될 때까지 그곳에 여유롭게 머무르고 싶다.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다니는 동안은 대도시가 더 좋았었던 것 같다. 좋았던 도시를 꼽아보라고 누군가가 물으면 언제나 파리나 런던이 순위권이었고 스위스에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는 식의 대답을 하곤 했는데 지금 다시 그런 질문을 받는다 나의 답변은 사뭇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에서도 살만큼 살아봤고 '바쁘고 복잡한 도시에 굳이 내가 포함되어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은 대도시의 빠른 흐름과 유행하는 맛집은 가끔씩만 들러 누려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포기할 만큼 자연인은 아니다.)



     여행을 와서도 교통이 편한 대도시에서 현대적인 건물과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조화에 감탄하고 미술관에 넘치는 명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바람, 햇살 같은)을 느끼면서 작은 골목을 걷고 알려지지 않은 레스토랑에 가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아졌다. 그러다 이대로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운 동네를 만나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와서 느긋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지는 보물 같은 작은 마을] 목록 같은 것에 추가해 둔다. 생소한 지명을 마음에, 나의 노트에 꾹꾹 눌러쓰며 돌아오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포지타노의 집들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벽의 높낮이와 바다의 울렁거림을 실컷 보고 나니 머리카락 아래 두피까지 바닷바람이 다 휘저어놓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하게 느껴져서 콧물을 훌쩍이며 선실로 들어왔다. 마린 스트라이프(Marine stripe)에 POSITANO라고 써진 기념 에코백을 사서 하나씩 나눠가지며 소녀처럼 기뻐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작은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마음을 지켜낸 저들이 멋있다. 인생의 풍파를 견뎌내고도 마음이 탄력을 잃고 굳어버리지 않고 소녀같이 웃을 줄 아는 그들의 주름이 아름다웠다.



     살레르노 항구에 도착해서 가까운 피자집 [La Madegra]에 들어갔다. 3대째 하고 있는 집이라고 하지만 전통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수학여행 같은 단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테이블 수많은 식당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투어에서 간식거리까지 제공해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맛이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나폴리에 가서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오리지널 이탈리아 피자를 먹는다'가 해보고 싶은 여행에 그새 추가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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