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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n 30. 2019

이탈리아에서 렌트하기

나란 여자, 여행지에서도 큰 웃음 주는 여자(feat.로마 허츠)

     드디어 렌터카를 빌려서 토스카나로 떠나는 날이 왔다. 중부의 소도시들을 둘러보고 피렌체로 가는 일정이다. 테르미니역 허츠(Hertz) 사무소로 미리 예약해둔 차를 찾으러 간다. 유럽에서 자동 차량을 빌리기 위해서 예약은 필수이고 예약을 했어도 내가 예약한 항목대로 차가 나오는 경우가 잘 없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던지라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있었다. 이탈리안 래퍼처럼 영어를 빠르게 뱉어내는 젊은 남자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게 좀 차가 크긴 한데"라며 핸드폰을 내민다. 역시나 시작이 좋지 않다. 세상 당당하고 주저함 없는 이탈리아인이 주춤거리며 본인 입으로 먼저 크다고 하면 이건 정말 엄청 크다는 얘기다.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로마'는 결코 기대를 저버리는 적이 없다. 와우! 9인승 승합차다. 이 정도면 항의할 기력도 없이 웃음밖에 안 나온다. "정말 진심이야? 나 그리고 엄마 이렇게 둘이 탈 건데?"라고 하니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웃는다.



     그동안 외국에서 일 처리가 느리거나 터무니가 없을 때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야기를 해봐야 상황은 하나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워왔다. 친절 과잉에 중독된 대한민국에서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 만족도 평가에 과민할 정도로 민감하고 그렇다 보니 언성을 높여 고함을 쳐서 (아이고 부끄러워라;;) 주위의 시선을 끌면 불만사항의 정당성을 판단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사과와 해결방안 제시로 상황을 종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목소리 큰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해결하는 동안 결국 보통의 다른 고객이 더 기다리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친절 과잉 사회의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 큰소리를 치면, 아는 척을 하면 으레 알아서 잘 모시겠지라고 생각하고 그게 통하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꾸 받아주면 더 버릇만 나빠진다는 주의인지라.) 사실 왜 그렇게 '친절'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무턱대고 언성을 높이는) 그런 태도는 전혀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사실 화를 낸다고 없는 중형차 크기의 자동변속기 차량이 갑자기 나타날 리 없다. '몇 달 전부터 예약했었다고' 정색하며 따박따박 따지면 보통 '없는 걸 어쩌니'라는 뜻한 어깨 으쓱거림만 돌아올 뿐이다. 내 작전은 '상황이 그렇다니 내가 너무 당황스럽구나. 내 행복한 휴가를 위해 너의 능력을 한번 보여주겠니?'하고 부탁하는 것이다. 너의 도움이 내게는 큰 의미가 있고 내가 아주 행복해질 것 같다는 뉘앙스로 접근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뿐만이 아니라 여행 중인 나의 감정에도 부장적인 영향을 남기지 않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의 이탈리안 래퍼 청년은 "그래, 커도 너무 크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의기양양하게 만면의 미소를 띠는 걸 보니 뭔가 잘 풀린 것 같다. "이거 원래 네가 예약한 것보다 등급이 높은 건데"라며 JEEP 차량을 보여준다. '특별히' 추가 요금 없이 데려가란다. '너희가 차가 없어서 그러는 거면서 생색은'이라는 생각은 마음속 깊숙이 묻어둔 채 고맙다며 그를 칭찬한다. 서류를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대기실에 이미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데 의외로 직원들이 빠릿빠릿한 것이 어색하다. 서류를 건네주고 어떤 차일까 사무실 안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려본다. '저 차인가 봐'하며 좋아하고 있는데 시원하게 후진을 하던 직원이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냈다. (역시 서두르며 빠릿빠릿 일하는 것도 해본 사람이 하는 거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네 차인데 안됐다"라고 한다. 호기롭게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낸 사고가 아니라서 전 정말 괜찮아요"라고. 할아버지가 흡족한 듯 웃는다. 차 키를 건네는 직원에게 서류를 건넨다.

"자 이 서류에 네가 낸 사고 흠집 표시하렴"

대기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며 웃는다. 나란 여자... 오늘 또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군! 직원이 대신 액땜도 해줬고 그럼 이제 안전운전을 하며 토스카나를 향해 북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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