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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l 15. 2019

몽환적인 작은 온천마을

반뇨비뇨니(Bagno Vignoni)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온천마을 반뇨비뇨니(Bagno Vignoni)로 가기로 했다. 차량을 빌려서 토스카나 지역을 보기로 결정하고 난 뒤 어떤 소도시를 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많이 검색하고 구글 지도를 랜덤 하게 눌러서 나오는 이미지도 구경했는데 검색을 하면 할수록 가보고 싶은 곳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선택장애 상태가 되어 버렸다.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들(몬테풀치아노, 몬탈치노, 끼안띠)도 가보고 싶고 SNS에 자주 등장하는 색색의 건물과 바다로 인상적인 친퀘테레도 가고 싶었다. 성지순례까지는 못하더라도 아시시는 한번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도시마다 가봐야 할 가야만 하는 이유들이 쌓여갔다.


     생은 길고 분명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로마와 피렌체 사이의 도시들만 가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수많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나를 유혹하지만 그래도 그 기준만으로도 많은 도시들이 추려졌다. 마음을 확실히는 정하지 못해서 (또 나의 운전능력으로 이동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몰라서) 하루에 꼭 가고 싶은 한 가지 도시만 정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시간을 보며 결정하기로 하고 구글 지도에 잔뜩 별만 찍어 놓았다. (구글 지도에 장소를 저장하면 노란 별로 기록된다.)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쉬면서 숙소 근처 찍어둔 별들을 보며 고심하다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다른 노란 별들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아쉬웠지만 언젠가라는 다음이 있으니까. 비가 그치고 갠 하늘은 한층 더 높고 깨끗하다. 이미 깨끗했던 하늘이 더 깨끗해질 수 있고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맑은 하늘이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에 익숙해져 있던 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폭우 속에 운전을 한번 했더니 차랑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든다. 금방 도착한 마을 입구의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다. (치비타와 너무 상반되는 풍경이다.)



      반뇨비뇨니는 인구수 30명의 작은 마을이다. 온천수가 솟아나는 커다란 온천욕장을 기준으로 (지금 그곳을 온천탕으로 쓰지는 않는다. 마을 가운데 큰 연못 같은 느낌이다.) 그곳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기념품점도 있고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야외 유황온천도 있는데 해가 질 무렵 도착한데다 허기가 져서 간단히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사실 이것도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갈까 기웃거린 셈이다. 나는 매우 금강산도 식후경 타입임으로) 바로 식당으로 직진했다.


     Ristorante Enoteca La Terrazza는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Enoteca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 지역 산지의 와인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호텔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방도 오픈 키친 형태로 깔끔해 보이고 특히나 반뇨비뇨니 전통의 방식으로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들었다는 생면 파스타를 팔고 있다.



     부실했던 점심을 보상하려 호기롭게 코스로 주문해 본다. 홈메이드 파스타도 하나씩 주문하고 스테이크(Entrecote)도 시켰다. 모양은 울퉁불퉁했지만 맛은 정말 훌륭했다. 생면의 식감은 부드러웠고 진한 소스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불맛을 잘 입힌 석쇠에 구운 등심 스테이크는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했다. 와인이 없다는 것만 빼면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와인도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사이즈(375ml)도 판매하고 있어서 신중히 골라본다. 계산을 하러 가니 매니저가 와인을 꾹꾹 참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비스코티를 전통이라며 챙겨주었다. 가서 와인과 같이 먹으라며 신경 써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작은 관심에 괜히 더 즐거워지는 저녁식사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온천수와 밤공기의 온도 차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물안개가 자욱한 도시의 분위기가 왠지 환상적인 분위기를 일으킨다. 이탈리아의 이색적인 풍경과 내가 가지고 있는 동양적인 온천의 분위기가 합쳐져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에서 일하는 요괴들이 나와야 하는지 백설공주에 나오는 것 같은 난쟁이가 나와야 할지 헷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몽환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밤공기를 마시며 혼자 판타지 세계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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