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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Jun 12. 2021

레벨 2: 파스타가 국수보다 쉽다.

인정하자. 국수보단 파스타를 만드는 남자이고 싶다고.

백주부가 아닌 요섹남처럼 보이고 싶다면, 파스타가 괜찮다. 율무차보단 아메리카노가 쿨한 것처럼 국수보단 파스타가 쿨해 보인다. 사실 만들기는 파스타보다 국수가 훨씬 번거롭고 어렵지만 어쩌겠는가. 국산보단 외산이 쿨해보이는 게 세계인의 고질적 병폐이고, 나도 당신도 이미 그 병폐에서 벗어나기는 틀렸다. 그러니 인정하자. 국수보단 파스타를 만드는 남자이고 싶다고.


#국수도 잘 만들면 쿨하다. 하지만 잘 만들 수가 없다.


물론 국수도 능숙하게 만들어내면 몹시 쿨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작 식빵이나 구워내는 레벨로는 절대 안된다.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각각 얇게 부친다음 일정한 두께로 썰어야 하는 고명부터 문제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은 양념장도 마늘을 다지는데서 막힌다. 국수면도 잘 끓여서 바로 찬물에 식혀야 한다. 육수도 미리 내야 한다. 각각의 과정마다 초보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하지만, 아침에 하기에는 너무 바쁘다. 국수를 그릇에 담을 때쯤이면 이미 마누라가 출근길 버스에 오른 뒤일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시간을 맞춰 완성했더라도 자칫 과도하게 정들어버린 음식쓰레기를 만들게 될 수도 있다. 마누라는 한 입만 먹고 남길 것이고, 괜히 주방을 어질렀다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스타는 다르다. 그냥 면만 삶아서 소스랑 같이 한 번만 볶아주면 끝이다. 슈퍼에 완제품 소스를 팔기 때문에 라면처럼 일정한 맛이 보장된다. 그러니까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낮고, 조리과정도 전혀 바쁘지 않다. 바쁜 아침이지만 아무리 손이 느려도 15분이면 완성 가능하다. 한마디로 난이도가 짜파게티 수준이다. 그러니 국수보다는 파스타를 만드는 쪽이 쿨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완제품 소스를 쓰자. 직접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선 슈퍼에 가서 파스타면과 완제품 파스타 소스를 산다. 토마토, 크림, 로제까지 종류별로 준비돼 있다. 봉투값을 따로받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슈퍼만 아니면 보통은 있다. 냄비에 물을 반쯤 채운 뒤 굵은 소금을 조금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인다. 면의 양은 1인분은 50원, 2인분은 100원짜리 동전크기정도다. 더 많이 넣는 사람도 있지만 살짝 아쉬울 정도로 적어야 맛있게 느껴진다. 파스타면은 보통 8~10분정도로 라면보다는 훨씬 오래 삶아야 한다.


면이 익는 동안 다른 화구에 후라이팬을 올려 불로 잠시 달군다. 웬만하면 후라이팬은 항상 예열한 뒤에 조리를 시작하는게 기본이다. 하다못해 계란후라이도 예열 후에 계란을 올려야 들러붙지 않고 예쁘게 나온다. 예열도 안 할 정도면 요리를 아예 안해봤음을 인정하고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어쨌든 예열된 후라이팬에 완제품 소스를 붓고(보통 한 병에 4인분이니 2명이 먹을거면 반정도 부으면 된다.) 30초 정도만 가볍게 뒤적거려준 뒤 일단 불을 끈다. 뒤적거릴 땐 당연히 나무주걱이나 실리콘 도구를 써야 한다. 스뎅 집게나 뒤집게로 해서 후라이팬 코팅을 다 긁어내는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이후 다 익은 면을 물을 따라낸 뒤 그대로 후라이팬에 투하해 다시 불을 켜서 볶듯이 섞어주면 끝이다. 면이 잘 익었는지 확인할 자신이 없으면 면을 넣고 나서 10분을 정확히 재는 것이 좋다. 만약 인덕션을 쓴다면 타이머가 있을테니 활용하자.


물론 완제품 소스에 면만 섞어서 내놓으면 요리라고 생색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럴 땐 소스를 볶기 전에 방울토마토(토마토 소스일 때)와 잘게 자른 베이컨을 후라이팬에서 먼저 볶은 뒤 소스를 부으면 좋다. 사실 양파 반개정도를 썰어서 같이 볶아주면 좋겠지만 양파를 잘게 잘 썰어낼 자신이 없으면 관두는게 낫다. 괜히 온 사방에 양파쪼가리가 튀어 욕만 먹는다. 아무튼 혹시 베이컨 등을 넣을 경우 손질하는 작업은 면을 삶을 물을 올려둔 뒤에 하면 된다.


베이컨과 소스를 후라이팬에 볶는 작업은 면이 익는 10분 동안 해야 한다. 만약 소스를 대충 볶았는데도 면이 다 안익었다면, 일단 소스에 불을 꺼야 한다. 쪼렙들은 조리 도중 불을 잠시 꺼도 된다는 걸 모르고 계속 켜둔채 뭔가를 하다가 혼자 당황하곤 한다. 베이컨 등을 볶고 나서 소스를 부을 때도 불을 잠시 꺼도 된다. 그냥 부으면 재료도 타고 손도 뜨거워서 사고가 날지 모른다.


#파스타의 포인트는 접시와 포크다.


식당에서처럼 완성된 파스타를 멋지게 돌돌 감아서 내놓으면 참 좋겠지만 쪼렙에겐 무리다. 연습해보려면 짜파게티로 먼저 해볼 것을 권한다. 그 전엔 그냥 짜파게티를 다루듯 집게로 적당히 나눠 담아서 내자. 대신 접시와 포크가 예쁘면 된다. 명절 때 과일담는 접시에 파스타를 담아 과일포크와 밥숟가락을 내놓으면 도무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파스타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마트나 다이소에 가서 파스타 1인분이 아름답게 담길 크기의 접시 2개와 좀 예쁜 포크를 사두자. 꼭 파스타를 안해먹어도 접시와 포크는 어딘가에는 쓰임새가 있으니 좀 예쁜걸로 사도 된다.


이제 마누라를 부르자. 후라이팬에서 면과 소스를 섞는 작업까지 끝난 때가 타이밍이다. 대충 봐서 3분 내로 올 분위기가 아니면 그대로 후라이팬에 올려놨다가, 올 때가 됐다 싶으면 다시 살짝 데워서 접시에 담아내면 된다. 식은 파스타는 식은 라면만큼이나 맛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눈치보기가 아니다. 아침밥 만들기 게임을 완벽히 클리어하는 비전의 전술이다.



<파스타 아침밥 만들기 공략 매뉴얼>

1) 냄비에 반정도 물을 붓고 끓인다. 굵은 소금을 조금 넣어 둔다.

2) 베이컨, 양파, 토마토 등을 곁들일 경우, 물이 끓는 동안 씻어서 다듬어 놓는다.

3) 끓는 물에 파스타면을 넣는다. 1인분 50원 2인분 100원짜리정도. 시간은 10분. 타이머를 켜둔다.

4) 후라이팬을 예열한 뒤 베이컨 등을 먼저 볶고, 불을 끈 뒤 완제품 소스를 붓고, 다시 불을 켜서 30초 정도만 휘적거려준다. 스뎅 집게, 뒤집게 사용은 금지. 다 했으면 면이 익을 때까지 다시 불을 꺼둔다.

5) 면의 물을 따라내고(짜파게티 만들 때 물 따라버리는 정도와 같게), 그대로 소스가 있는 후라이팬에 투하한다. 그리고 불을 켜고 30초정도만 휘적거려준 뒤 다시 불을 끈다.

6) 마누라가 올 타이밍을 본다.

7) 마누라가 오기 2분 전에 접시에 적당히 나눠 담아낸다. 탄산수나 콜라가 있으면 같이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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