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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Jun 04. 2021

레벨 1: 씨리얼부터 시작하자.

처음부터 '요리'로 불릴만한 것에 도전해서는 안된다.

어렵게 생각하면 도저히 아침밥을 준비할 수 없다. 처음부터 '요리'로 불릴만한 것에 도전하지 말자. 도전이 아니라 만용이다. 굳이 도전하겠다면 혼자 먹을 때 하자. 생체실험 대상은 나 혼자여야만 한다. 예전에 어설프게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치다가 설탕과 소금을 구분 못해 소금을 뿌려 내놓은 적이 있다. 둘은 눈으로 구분도 어려운데 의외로 혀 끝으로는 맛도 분간이 잘 안된다. 아무튼 맛소금에 절인 토스트를 내놓고는 "그래도 사람이 노력을 했는데 먹는 척이라도 해줘야지."라고 할 수는 없다. "설탕과 소금도 구분 못하냐."는 비난에 화를 내서도 안된다. 소금토스트를 먹으면 누구나 화가 나기 마련이니까.


#내가 만든 음식쓰레기에 정을 붙여서는 안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내일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적어도 일주일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설픈 요리는 절대 금물이다. 바쁜 마누라를 붙잡고 생체실험을 해서는 안된다. 결국 음식쓰레기가 될 뿐이다. 그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마누라에게 근본 없는 화가 치밀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마누라 탓이 아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덧 그 음식쓰레기와 정이 들어 버린 내 탓이다.


혹시 할 줄 아는게 라면 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아침밥 준비의 시작으로 씨리얼을 추천한다. 먼저 씨리얼은 누구나 준비할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조카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준비시간도 30초면 충분하다. 심지어 먹는데도 3분이면 된다. 그럼에도 필요한 영양은 골고루 들어있으면서 맛까지 있다. 종류도 다양해서 취향이 존중되고, 부스러기나 쓰레기, 설거짓거리도 최소화된다.


#씨리얼 준비의 포인트, 우유를 부어놓지 말 것.


준비는 너무나 쉽다. 그냥 그릇에 씨리얼을 붓고 우유와 숟가락을 꺼내놓으면 된다. 포인트는, 절대 우유를 부어 놓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유를 부은 씨리얼은 금방 눅눅해지기 때문에, 마누라가 썬크림을 바르고 나오는 사이 이미 맛이 없어져 버릴 것이다. 물론 불어터진 씨리얼을 선호하는 특별한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미학적으로는 엉망이다. 음식은 코와 눈으로도 먹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아침밥 준비를 완료한 즉시 마누라가 식탁에 앉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미리 앉아 있을 것을 기대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잘 모르겠으면 생각해봐라. 엄마가 밥 먹으러 나오라고 했을 때 10초 내에 식탁에 앉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사과 반쪽을 곁들여보자. 껍질째로.


물론 씨리얼만으로는 영 아침밥을 준비한다는 생색을 내긴 부족하다. 그렇다면 사과 반쪽을 함께 준비해보자. 이것만 곁들여도 '준비한' 아침밥처럼 보인다. 마누라의 눈빛이 달라진다. 사과는 색감, 식감, 맛, 보관, 가격이 모두 좋고 질리지도 않는 과일의 대표다. 과일하면 사과부터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씨리얼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껍질은 깎을 줄 몰라도 된다. 사과는 껍질째 먹어야 쿨하다. 칼로 돌려가며 깎아서 조각조각 자르면 어쩐지 명절 느낌이 난다. 껍질째 팍팍 슬라이스로 잘라서 작은 접시에 꽉 차게 담아야 호텔조식 느낌의 다이어트식 모양새가 된다. 물론 물로 뽀득뽀득 씻지도 않고 내놓는 만행은 결코 저질러서는 안된다. 큰 식칼로 한가운데를 잘라서 일단 반쪽은 랩으로 싸거나 자신 없으면 위생팩에 대충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건 내일 아침에 노랗게 된 표면만 잘라내고 쓸 것이다. 나머지 반 쪽은 씨가 있는 축 부분을 남기고 우좌뒤 순으로 자른다. 세 조각이 나오면 다시 두꺼운 슬라이스로 삼등분으로만 잘라서 작은 접시에 담아 낸다. 과도보다 식칼이 잘 들어서 쓰기 좋다. 제철이 아니어서 좋은 사과가 없을 땐 딸기나 복숭아, 토마토, 오렌지도 괜찮다.


이제 전략게임처럼 순서를 짜맞출 차례다. 질럿이 앞서야지 드래군이 앞서서는 안된다. 씨리얼을 담은 그릇과 우유를 내놓고, 그 다음에 사과를 씻어 썰어내야 한다. 자신 없다고 사과를 먼저 썰어서는 안된다. 사과는 썰어둔 뒤 몇 분만 지나면 노래져서 보기에도 안좋지만 그 아삭거리는 식감도 사라진다. 


마누라는 언제 불러야 할까. 씨리얼을 꺼내 놓고, 사과를 씻고, 내일 먹을 반쪽을 랩에 싸서 넣어둔 뒤가 타이밍이다. 그래야 사과가 노래지기 전에 마누라가 식탁에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씨리얼 아침밥 만들기 공략 매뉴얼>

1) 씨리얼을 그릇에 붓는다. 취향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을 섞어도 좋다.

2) 숟가락과 우유를 꺼내놓는다. 절대 우유를 부어놓아선 안된다.

3) 사과를 씻어서 반을 잘라 랩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나머지 반을 껍질째 두꺼운 슬라이스로 잘라 사과가 꽉 차도록 작은 접시에 담아 낸다. 사과가 비쌀 땐 오렌지나 토마토 등 다른 과일도 좋다.

4) 마누라가 식탁에 오면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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