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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Jun 13. 2021

레벨 2: '밥'짓기는 미역국부터 시작하자.

모든 국 중에 미역국이 제일 쉽고 실패도 적다.

아침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간단히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 식사를 통칭하는 밥이 아니라 '쌀밥' 말이다. 그런데 밥을 지으려면 쌀을 씻어야 하고, 물을 맞춰야 하고, 무엇보다 완성되는데 최소 20분이 걸리기 때문에, 약간의 여유를 갖고 준비해야 한다. 물론 전 날 미리 지어놔도 되지만 밥은 갓 지어먹어야 맛있다.


반찬이 있으면 밥만 지어서 먹을 수도 있겠지만, 맞벌이 부부는 집에 반찬을 장만해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국 하나만 있으면 괜찮은 아침밥을 완성할 수 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가장 쉽다고는 하지만 초보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일단 김치, 두부, 애호박 등 재료를 썰어서 준비해야 하고, 멸치나 다시마로 육수도 내야 한다. 칼질을 좀 해보기 시작하면 너무나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이제 겨우 식빵을 굽기 시작한 수준에서는 감히 도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역국을 추천한다. 미역국은 만들기도 쉽지만 먹을 때 속에 부담도 적고, 집안에 냄새도 상대적으로 덜 배고, 실패할 가능성도 낮다. 싫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생일날 아침에는 생색도 낼 수 있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잘 먹는다.


#초보에게 칼질은 어렵다. 그래서 미역국을 추천한다.


미역국은 일단 칼질이 필요 없다. 슈퍼에서 '자른 미역'과 만원짜리 '국거리 소고기 팩'(양지머리)만 사오면 된다. 국거리 소고기 팩은 슈퍼에 없으면 근처 정육점에서 산다. 자른 미역을 파는 슈퍼가 있다면 근처에 정육점도 아마 있을 것이다. 혹시 참기름과 국간장도 집에 없다면 슈퍼에서 사야 한다. '진간장(양조간장)'이 아니고 '국간장'이다. 국간장은 반드시 국간장이라고 쓰여 있으니 잘못 사서는 안된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슈퍼 점원이나 주변인에게 물어보자. 모를 때 질문을 망설이면 꼰대가 된다.


만들기는 간단하다. 일단 자른 미역을 국그릇에 5분의 1 정도만 담아서 물을 부어둔다. 미역을 이 정도만 써도 2~3인분이 나온다. 혹시 실수로 자른 미역이 아니라 큰 미역을 사버렸다면, 가위로 최선을 다해 잘게 자르면 된다. 대충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자른다. 1~2분만 지나면 미역이 물에 불려져 국그릇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다음 냄비에 식용유 대신 참기름을 뿌리고, 만원짜리 국거리 소고기 한 팩의 반 정도를 넣어 겉만 익을 정도로 볶고, 물에 불린 미역을 물은 버리고 미역만 넣어 다시 1분 정도만 볶은 뒤 물을 냄비의 반쯤 넣고 중불에서 10분 정도 끓이면 끝이다. 마지막에 국간장을 두 숟갈 정도 넣어주면 된다. 


참고로 이 글을 본 아저씨들조차 "소고기 대신 굴이나 북어를 써도 좋다"거나 "아무 것도 없을 땐 그냥 미역만 끓여도 먹을만 하다."는 등 한 마디씩 거들 정도로 미역국 만들기는 쉽다.


#오래 끓일 땐 절대 센 불은 안된다. 간장은 반드시 국간장이다.


초보들을 위해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우선 고기와 미역을 볶을 땐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주걱 종류를 써야 한다. 절대 '스뎅'으로 된 집게나 뒤집개를 쓰는 만행을 저질러선 안된다. 냄비 바닥 다 까진다.


물을 넣고 끓이는 시간은 10분 정도면 되는데 일단 끓기 시작하면 센 불이 아닌 중불로 낮춰야 한다. 국물을 내기 위해 오래 끓이는 것이고, 오래 끓일 땐 대체로 중불이나 약불로 해야 한다. 센 불로 하면 냄비가 넘치거나 종국에는 국물이 다 쫄아버릴 수 있다. 센 불로 한다고 10분 끓일 것을 5분만 끓여도 되는 건 절대 아니니 무식한 오기를 부려서는 안 된다.


간 맞추기는 마지막에 국간장을 밥숟가락에 두 숟갈 정도만 넣어 보고, 간이 부족하면 한 숟갈씩 더 넣어 맞추면 된다. 초보 주제에 절대 간장 병째로 대충 부어서는 안 된다. 간장이나 소금은 더 넣을 수는 있어도 뺄 수는 없다. 간을 봐가면서 조금씩 더 넣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국간장'이다. 국간장은 간장병에 '국간장'이라고 반드시 쓰여 있다. 진간장을 잘못 넣으면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이 오묘하니 결코 성공한 아침밥은 되기 어렵다.


#아침 시간은 바쁘다. 국이 끓는 동안 세수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이제 전략게임처럼 순서를 짤 차례다. 무엇이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인지, 무엇이 사과처럼 미리 썰어두면 금방 맛이 없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미역국 아침상의 첫 순서는 밥짓기다. 밥은 '쾌속취사'로 해도 20분이 걸린다. 그러니 맨 먼저 쌀부터 씻어서 안친다. 물의 양은 밥솥에 눈금으로 표시돼 있으니 맞춰서 하면 된다. 쾌속취사는 대개의 전기밥솥에서 '취사'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된다. 물론 아침에 시간이 충분히 많다면 35분이 걸리는 일반 취사를 하는 게 맛은 더 좋다.


그다음 자른 미역을 국그릇(대접 말고 국그릇 기준이다.)의 5분의 1 정도만 담아 불려둔다. 이어 냄비를 센 불로 30초가량 달구고, 그동안 국거리 소고기팩을 꺼내고, 예열된 냄비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소고기를 팩의 반 정도 넣고 빨간색이 없어질 정도로만 볶는다. 잠깐 불을 끈 뒤 불린 미역의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냄비에 불을 켜고 미역을 넣어 1분 정도만 살짝 볶는다. 그리고 미역을 불렸던 그 국그릇에 물을 담아 냄비에 부어준다. 보통 그 국그릇에 2~3번 정도 부으면 적당하다. 중불로 10분, 대략 쾌속취사가 완성되기 직전까지 끓이면 된다.


이제 밥과 미역국이 완성되는 동안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 시간은 늘 바쁜 법이니까.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불이다. 자신 없으면 아예 약불 정도로 해두는 게 안전하다. 안 그러면 세수하는 동안 국이 넘치거나 국물이 쫄딱 쫄아버리는 참사가 발생한다. 냄비가 너무 작으면 넘치지 않게 뚜껑을 조금 열어 둬야 한다. 가스렌지에 국이 넘치면 치우기 상당히 번거롭다. 해보면 안다. 누구든 화가 날 일이다. 물론 마누라도 포함된다. 


반찬은 김치만 있으면 된다. 바쁘니까 반찬통째 꺼내 놓자. 반찬통에 담긴 김치마저 없으면 그냥 안 먹어도 된다. 전기밥솥이 취사를 완료하기까지 씻고 준비하고도 시간이 남았다면 계란후라이를 추가로 준비해도 좋다. 혹시 도저히 아침에 미역국까지 준비할 자신이 없다면 전날 밤에 미리 만들어놔도 된다. 미역국은 아침에 다시 데워도 여전히 맛있다.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다. 밥을 맨 나중에 뜨자.


이제 마누라를 부르자. 부르는 타이밍은 밥이 완성된 뒤 밥과 국을 뜨기 직전이다. 수저와 김치를 먼저 꺼내 두고, 그 다음 국을 뜨고, 계란후라이를 후라이팬에서 접시에 옮겨 담고, 마지막에 밥을 뜬다. 식어서 금방 맛이 없어질 것 같은 것을 가장 나중에 그릇에 담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도 밥을 맨 마지막에 퍼줄 때가 많았을 것이다. 혹시 마누라가 바로 올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면 올 것 같을 때 뜨자. 밥은 갓 떠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야 맛있으니까.



<미역국 아침밥 만들기 공략 매뉴얼>

1) 쌀을 씻어서 쾌속취사로 밥을 안친다.

2) 자른 미역을 국그릇의 5분의 1 정도만 담아서 물을 넣어 불린다.

3) 냄비를 예열한 뒤 참기름을 두르고, 만원짜리 국거리 소고기팩의 반 정도를 넣어 빨간색이 없어질 정도로만 살짝 볶는다.

4) 잠시 불을 끄고 불린 미역의 물을 따라버린 후 미역을 냄비에 넣고 다시 센 불로 1분 정도만 살짝 볶는다.

5) 미역을 불렸던 국그릇으로 두세 번 정도 물을 떠서 부은 뒤 끓인다. 중불 혹은 약불에서 10~15분 정도.

6) 국이 끓는 동안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7) 시간이 남으면 계란 후라이를 후라이팬에 만들어 둔다.

8) 수저와 김치를 꺼내 두고, 마누라가 올 타이밍을 잡는다.

9) 마누라가 올 것 같을 때 미역국, 계란후라이, 밥 순으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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