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IR I.8.1] 4차 산업혁명 크게보기- 보충 2
여러 가지 기술/지식, 제품/서비스, 산업 등이 융합된 결과물인 스마트 시스템(예: 스마트 도시,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팩토리)은 일반적으로 크고 복잡하며, 최종 결과물이 어떤 모습일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개발-제작됩니다. 이 경우, 시스템/SW 공학이나 프로젝트 관리 같은 체계적 방법론이 필요한 데 미국이나 EU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와 같은 기법에 대한 연구, 교육훈련, 적용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 글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글 즉,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시스템(http://brunch.co.kr/@duk-hyun/14)’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한 보충입니다.
스마트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관련 이해관계자가 대상 시스템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큰그림’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독일 Industrie 4.0의 RAMI 4.0과 미국 산업인터넷컨소시엄(IIC)의 IIRA는 각각 스마트 팩토리와 산업용 IoT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이하에서 몇 가지 용어/개념을 정리한 후 두 가지 참조모형(Reference Architecture)의 구성과 의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RAMI 4.0의 세부 내용은 독일 정부의 플랫폼 인더스트리 홈페이지(http://www.plattform-i40.de/)에서, IIRA에 대한 세부 내용은 IIC 홈페이지(http://www.iiconsortium.org)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국내 자료로는 ‘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귀환’(대표저자 김은, 펴낸곳 클라우드 나인, 2017년 8월)의 8장 ‘표준과 기술적 프레임워크’(김미정 저)가 있습니다.
▮ 모델, 모델링: 모델(model)이란 현실세계(예: 스마트 시스템)의 특성을 추상화(abstraction), 일반화(generalization), 단순화(simplification) 한 것이다. ‘추상화’란 ‘구체화’의 반대말로 관심 있는 대상이 가진 수많은 특성 중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특성만 뽑아내는 작업을 가리킨다. 결국, 모델링(modeling)이란 추상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이용할 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모델은 그 속에 특성을 많이 담으면 담을수록 현실세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지만, 모델을 다루는 데 필요한 비용/노력이 커지므로 적정 수준으로 추상화해야 한다. 모델은 형태에 따라 敍述적 모델(예: 말이나 글), 物理적 모델(예: 배나 항공기 실물을 10%로 축소한 것), 論理적 모델(예: 온라인 쇼핑 절차), 圖解적 모델(예: 그림, 도표), 數理적 모델(예: 선형계획법, 딥러닝 알고리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모델은 일단 만들어 놓으면 동일한, 또는 유사한 특성을 가진 개체(‘instance’)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붕어빵 장사가 붕어빵 틀(즉, 모델)을 갖추면 아주 쉽고 빠르게, 또 정확하게 붕어빵(즉, 인스턴스)을 찍어 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아키텍처(architecture): 특정 시스템의 구조 즉, 구성요소와 그들 간의 관계, 설계 및 설계 변경에 대한 기준 등을 정의한 모델들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63빌딩을 건설할 때, 빌딩의 층별 구성, 층과 층을 잇는 장치, 그리고 그와 같은 고층빌딩을 설계하거나 설계 변경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을 포함한 여러 가지 기술문서/도면의 집적체를 ‘63빌딩의 아키텍처’라고 한다.
▮ 정보시스템 아키텍처(ITA) 또는 全社的 아키텍처(Enterprise Architecture): ITA는 업무 프로세스, 정보, 애플리케이션, 기술 등을 정의한 모델들의 집적체로서 현재 상태(AS-IS)와 목표 상태(TO-BE), AS-IS로부터 TO-BE로 전환해 가기 위한 계획 등을 포함한다. AS-IS, TO-BE, 전환계획 중에서 빠진 게 있다면, 추후 중복, 비효율, 구성요소들 간의 연결/통합 즉,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결여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아키텍처 프레임워크(AF): 프레임워크(framework)는 특정 문제/시스템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개념적 틀을 말한다. 아키텍처 프레임워크는 아키텍처를 만들 때 적용하면 좋을 원칙과 기준을 정의한 것이다. 정보시스템 경우, 1980년대 말, IBM 엔지니어였던 John Zachman이 만든 자크만 프레임워크, 이후 국방시스템을 위한 C4ISR AF와 DoDAF, 미국 연방정부의 FEAF, 그리고 The Open Group의 TOGAF 등이 개발되었다. 이들은 정보시스템의 기획/계획-개발-운영유지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모델들에 대한 기준/원칙을 제공한다.
▮ 개념적/논리적/물리적 모델: ITA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view)을 반영한 모델, 예를 들면 사용자, 설계자, 제조자를 위한 개념적(conceptual)/논리적(logical)/물리적(physical) 모델을 포함한다. 스마트 자동차 경우, 세 모델은 각각 운전자나 보행자, 차량 HW와 SW의 설계자, 부품 제조자와 SW 개발자를 위한 모델인 셈이다. 세 모델은 목적과 표현방식이 다르다. 즉, 개념적 모델은 사용자에게 제공될 서비스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에, 논리적 모델은 사용자 요구사항을 정확한 설계 규격으로 정의해서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것에, 물리적 모델은 효율이 높은 시스템이 구현/제작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 참조모형/참조구현: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종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할 때, 미국/EU에서는 흔히 다음과 같은 수순을 거친다.
① 운영개념(COP: Concept of Operation) 정의: COP는 새로운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될지 설명하는 글이나 SW개발방법론 중 하나인 UML(Unified Modeling Language)의 유스케이스(Use Case)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② 참조모형(Reference Model):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개념적/논리적 모델을 가리킨다.
③ 참조구현(Reference Implementation): 참조모형에 정의된 논리적 모델을 물리적 모델로 변환해서 프로토타입(prototype, 시작품/시제품)으로 구현한 것으로 확장 또는 확대 적용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프로토타입은 목적에 따라,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데모 프로토타입, 제작/개발 가능성이나 용이성을 확인하기 위한 신속(rapid) 프로토타입, 제작 결과가 실제 활용될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한 운영(operational) 프로토타입 등으로 구분된다.
독일은 2015년, 스마트 팩토리에 대한 참조모형으로 RAMI 4.0 (Reference Architecture Model for Industrie 4.0)을 개발하였다. 이것은 제조혁신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스마트 팩토리’ 개념을 공유하고 구성요소와 구성요소 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중복과 비효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RAMI 4.0은 스마트 팩토리의 구성요소를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축(dimension)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o X축: 제품수명주기에 따른 가치흐름 즉, 개발-생산-판매-유지보수
o Y축: 스마트 팩토리의 계층 즉, (최상위의) 연결된 세계-기업-작업장(work center)-작업대(station)-제어장치-생산장비-(최하위의) 제품
o Z축: 가상물리 레이어 즉, 물질세계, 디지털화(즉, 두 세계의 통합), 디지털세계(커뮤니케이션-데이터-기능-업무 프로세스)
X축은 기존 표준인 IEC 62890(제조 프로세스 측정, 제어, 자동화)의 영역이며, Y축은 기존 IEC 62264(전사 차원의 제어시스템 통합)와 IEC 61512(뱃치 방식 제어)의 영역이다. 현실세계와 디지털세계를 연결/통합하기 위한 Z축에 대한 표준화에 따라 기존 표준들의 개정, 보완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7개 계층으로 구성된 Y축은 ① 연결된 세상, ② 스마트 팩토리 (즉, 기업-작업장-작업대-제어장치-생산장비), ③ 스마트 제품 등 3 계층으로 재정립될 것이라 한다.
미국 산업인터넷컨소시엄(IIC)도 2015년, 산업용 IoT 참조모형인 IIRA (Industrial Internet Reference Architecture)를 제정하였다. IIRA는 사물인터넷이 적용된 시스템을 업무(business), 사용(usage), 기능(function), 구현(implementation) 등 4개의 관점에 따라 모델링한 것이다. 업무 관점은 사물인터넷의 사용자와 개발자, 관리자 등이 갖고 있는 비전, 가치, 목표, 요구기능 등을 포함하고 있고, 사용 관점은 구현될 시스템과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수행하는 작업, 활동, 역할 등을 포함하고 있다. 기능 관점은 산업인터넷에 연결된 실물(예: 가전제품, 항공기 엔진, 자율주행 자동차)과 상호작용하는 5개 영역(domain) 즉, 제어(control), 운영(operation), 정보(information), 애플리케이션, 업무(busines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현 관점은 실물에 부착된 센서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서버나 클라우드에서 받아서 분석하며, 그 결과를 타 애플리케이션에 전달하는 3개의 영역으로 구성된다.
기능 관점의 5개 영역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GE가 생산-판매하는 발전기의 가동 방식을 예로 든다면, 업무 영역에서는 고객사에 설치된 발전기의 상태를 GE 본사에서도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부품의 교체나 수리, 오일 보충 같은 유지 작업을 지시할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는 GE가 개발한 산업인터넷 플랫폼인 Predix 위에서 AI 기반의 빅데이터 분석과 장비관리 응용 SW가 실행될 것이다. 정보 영역에서는 발전기 자체와 구성품의 상태, 동작, 가동환경 등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와 과거 정비/수리 이력처럼 기존 업무 DB에 수록되어 있는 데이터가 클라우드나 중앙 서버에 저장, 관리될 것이다. 운영 영역에서는 기기/장비, SW가 실제 가동/운영될 것이고, 제어 영역에서는 발전기와 발전기 주변에 설치된 센서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서버에 전송하며,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장비나 SW의 구동지시(actuating)가 전달될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 참조모형인 RAMI 4.0과 산업인터넷 참조모형인 IIRA는 표준화 과정에서 양쪽 전문가들이 상호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RAMI 4.0은 일찍부터 생산자동화를 포함한 기업통합 모델링(예: CIMOSA, ARIS, GERAM)을 연구해 온 EU의 저력이 반영된 모델이다. IIRA는 객체모델링 표준기구인 OMG, 아키텍처 표준을 관리하고 있는 The Open Group 등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 및 SW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기술이 반영된 모델이다. 따라서, 두 개의 표준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될 경우, 실질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IIRA에는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주도로 개발된 스마트 제조시스템,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도시,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등에 대한 표준화 산출물이 반영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조모형은 여러 가지 스마트 시스템이 산업별, 시스템별로 각각 구축되더라도 중복과 비효율을 피하고 필요시, 연계-통합되어 보다 의미있는 정보/지식을 얻으며 자동화/지능화 수준과 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해 준다. 자동차, 공장, 빌딩, 도시, 전력의 수요-공급망(그리드) 등은 과거에는 별개 산업/시스템으로 다뤄왔지만, 이제부터 만들어 갈 스마트 시스템은 참조모형을 공유하고 플랫폼(또는 인프라) 부분은 국가 차원에서 공동으로 설계-구현-활용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