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너란 녀석..
첫 번째 금전 대여만 경험했다면, 궁지에 빠진 성실한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또 다른 어려운 사정이 생겨 상환일을 어겼을 뿐인데, 그걸 못 기다리고 재촉하는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혼자 씁쓸하게 웃으며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A업체 대표는 돈을 상환한 다음날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만 더 돈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번엔 처음에 빌려준 금액보다도 적은 금액이었다. 위에서 말했듯, 그 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 스스로를 의심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괜히 A업체 대표를 오해했단 생각에 미안함 마음이
들어 또 빌려주겠다고 했고 두 번째 금액을 송금했다.
이번에도 A업체 대표는 본인의 사정을 설명하고, 지난번에 상환 날짜 어긴 사정을 말해주며, 이번에 빌려주면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과 어떤 방법으로 갚을지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번에 빌려준 돈과 그동안 밀린 세무 수수료도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빌려주었다.
빌려주고 나니 또 후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나한테 했다면,
너 바보냐? 그걸 왜 빌려줘, 네가 왜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리고 밀린 수수료는 받지도 못할게 뻔한데 왜 빌려주냐고 그 피땀 흘려 번 돈을!
이라고 했을 거다. 맞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내 행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혼자 변명을 하자면, A업체 대표의 목소리에 신뢰가 가득했고, 그동안 결국에 수수료도 입금해 줬고, 돈을 빌려준 후 연락도 잘 됐고, 상환기한이 늦어졌지만 빌려준 돈도 입금해 줬으니.. 그리고 만약 금전 대여를 거절한다면 A업체 대표와 연락이 끊겨 결국엔 밀린 세무수수료도 못 받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성공한 사업가의 강연을 들었었는데, 은행 신용등급을 올리는 방법으로 필요하진 않아도 대출을 실행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상환기간에 맞게 상환을 하고 이자도 꼬박꼬박 낸다면 신용등급이 올라간다고 했다. 마치 그 말처럼, 첫 번째 빌려준 금액을 상환한 A업체 대표는 나에게 신용등급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보다. 그러니 또 돈을 빌려주었지. (왜 상환기한을 어긴 건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두가 예상한 대로 A업체 대표는 두 번째 금전대여 상환기한에 돈을 상환하지 않았다. 연락도 잘 안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연락이 와서, 세무 업무를 하나만 처리해 달라고 했다. 참 해주기도, 안 해주기도 애매한 업무였다. 돈 안 갚는다고 간단한 신고서 하나 안 해주는 것이 뭔가 찝찝했다. A업체 대표가 부탁한 업무를 해주면 정말 고마워서라도 빨리 내 돈도 갚고 밀린 세무수수료도 주겠지란 생각으로 신고를 해주었다.
그렇다. 나는 빌려준 돈과 밀린 세무수수료를 받기 위해 완벽한 을이 되어 있었다. 내 돈을 받기 위해 A업체 대표와 연락이 끊기면 안 됐고 A업체 대표에게 잘 보여야 했다. 밀린 수수료를 받기 위해 소정의 금액을 빌려주기까지 했으니.
두 번째 금전 대여도 상환일이 지나서, 상환일이 지나고 내가 수차례 전화를 해서, 결국 돈을 받았다. 하지만 똑같은 패턴이었다. 돈을 상환한 다음날 A업체 대표는 또 전화를 해서 두 번째보다 적은 금액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번엔 거절을 하고 통화를 끊었다. 하지만 업체 대표는 계속 전화를 해서 사정사정을 하며 애원했다. 그래.. 이번에 빌려주면 자금난이 해결된다니 밀린 수수료도 받을 수 있겠지.. 결국 빌려주었다. 그리고 난 또 송금한 내 손가락을 자책하며, 돈과 밀린 세무수수료를 보내달라며 속앓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 4~5번 정도 반복되었다. A업체 대표에게 빌려준 돈을 겨우 받았지만, 매번 그다음 날 더 적은 금액을 빌려달라고 했다. 거절을 하면, 나 밖에 돈을 빌릴 사람이 없다며(아니, 왜 하필 나야?) 빌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뭘 팔고 뭘 팔아서 갚겠다고, 자동차 대출을 받았는데 수수료가 필요해서 수수료를 빌려 달라고, 지금 쿠*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다음 주면 아르바이트 비용이 들어온다고, 아르바이트 비용이 들어왔는데 압류로 통장이 묶여 있어서 묶인 돈을 풀려면 수수료 얼마를 내야 하는데 그 수수료를 위해 추가로 돈을 빌려 달라고. 전화를 안 받으면 다른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채무자에게 시달린다며 나에게 연락도 없이 본인 번호를 바꿨다.
너무 속상했다. 정말 처음엔 A업체 대표를 믿고 돈을 빌려준 것인데, 결국엔 A업체 대표에 대한 불신만 가득하고, A업체 대표의 성실함을 믿었는데 오히려 나를 이용했단 생각에 배신감도 들었다. 그깟 돈 안 받고, A업체 대표와 연락을 끊을까 했다. 하지만 호구처럼 빌려준 내 돈, 받지 못한 세무수수료 생각에 오기로 전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약 6개월이 지났을 때, 결국 내가 빌려준 돈도 밀린 세무수수료도 다 받았다. 그리곤 그다음 날 A업체 대표는 구구절절 카톡으로 자신의 사정을 말하며 3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 카톡을 마지막으로 A업체 대표 연락처를 수신 거부했다.
금전소비대차 경험 덕분에 브런치에 사무실 운영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돈을 빌려준 사실을, 그래서 받지 못했단 사실을, 이로 인해 속앓이를 하고 있단 사실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면 나를 바보 같다고, 순진하다고 비웃을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1도 모르는 철부지로 여길 것 같았다. 하지만 나 혼자 끙끙 앓기엔 내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고 답답했다.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옹알이밖에 못하는 내 딸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었다. 그래도 답답해서, 풀어내야겠다 생각에 브런치에 쓰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큰돈이 아니란 생각에 쉽게 빌려주었던 것 같다. 돈을 떼일 일은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게 봤던 사람이라, 내 눈이 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사정이 딱하면 나한테까지 전화했을까란 생각을 했다. 옹졸한 채권자들처럼, 사채업자처럼 돈 빌려줬다고 유세 부리며 갑질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말 사정이 어려운데 괜히 내가 채무를 독촉했다가 잘못될까 봐 겁도 났다. 하지만 왜 하필 나였을까, 내가 만만하게 보였나, 내가 채권을 쉽게 포기하면 상대방은 돈 빌리는 일을 쉽게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날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한 말은 다 거짓이고, 도박이나 카드깡, 불법적인 일을 위해 나한테 손을 벌린 건 아닐까 의심도 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구한테 자선사업을 하는 건가 현타도 왔었다. 크지 않은 금액을 빌려주면서도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돈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