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나중에 보증도 서겠어
거래처 중에 성실한 청년이 운영하는 사업장A가 있었다. 젊은 남자 대표로, IT쪽 사업을 하는 업체였다. 사업장 A는 공유오피스에서 알게 된 업체로, 부가세 신고가 급해 옆방에 있는 세무사인 나한테 세금 신고를 의뢰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한테 사업장A는 개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신고대리 업체라 소중했으며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 사업장 A도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업체로, 서로 같이 성장해 나가면 되겠다며 혼자 내적 친밀감도 쌓고 있었다. 다행히 A업체 대표님은 내 세무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후에도 신고대리 업무를 계속 나한테 맡겼고, 매출이 급격히 커지자 기장도 나한테 맡겼다.
같은 공유오피스 건물에 있으니 A업체 대표님을 마주칠 일이 가끔 있었다. A업체 대표님은 젊은 MZ세대답게 의상이 자유로웠다. 그리고 업무 시간도 자유로웠다. 보통적인 업무시간인 9 to 6에는 연락이 잘 안 됐다. 세금 신고를 위해 자료 요청을 하면 대부분 늦은 시간에 자료를 보내주었다. 요청한 자료와 수수료를 제때 받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늦더라도 결국엔 자료도 수수료도 보내주었다. 신생업체로 1인 사업장이면 본업 외 부수적인 부분을 챙기기 어려운 걸 알기에 이해했다. 또한 본인이 늦게 보낸 자료로 세금신고에 차질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하며 오히려 자료도 늦게 보냈는데 잘 신고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A업체는 세금 신고를 할 때마다 매출 금액과 거래처가 꾸준히 늘어났다. 업체 대표님은 업무시간은 자유로워도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본인이 조금은 손해 보더라도 같이 일하는 후배를 챙겨주는 태도도 볼 수 있었다. 어리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업을 하는 태도를 참 좋게 봤던 것 같다. 좋은 업체로 크게 성장하길 속으로 응원했다.
어느 날부터 A업체의 기장 수수료와 신고 수수료가 입금되지 않았다. 연락도 예전보다 더 안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전에도 연락은 잘 안 됐지만, 수수료를 제때 넣어주진 않아도, 미수 금액을 알려주면 바로 입금해 주는 업체라 느긋하게 기다렸다. 약 6개월 정도 수수료가 입금되지 않았을 때 업체 사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부가세 신고 기한이라 신고 업무 때문에 전화한 줄 알았는데 예상밖에 얘기를 했다.
바로. 돈을 빌려달라는 것.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에 쿨하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A업체 대표 개인통장으로 송금할 때도 (1초 정도는 머뭇거렸지만) 쿨하게 송금했다. 하지만 송금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왜 빌려주었을까. 생각해 보니 자주 만난 적도 없었고, 만나도 세금 신고를 위해 간단히 업무적인 이야기를 한 게 전부였다. 밥 한번 같이 먹은 적도 없었다. 또 생각해 보니 거래한 기간도 길지 않았다. 뭘 믿고 혼자 쿨한척하며 돈을 빌려주었을까. 아마 그동안 A업체 대표를 좋게 봤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돈을 빌려달라는 통화 목소리에도 신뢰가 가득했고, 차분히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들어올 매출대금이 있어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도 명확했다. 그리고 사정도 딱해서 도와주어야겠단 생각, 얼마나 급하면 주변 지인도 아니고 세무대리인인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까, 마침 최근에 발행된 A업체의 매출 세금계산서도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서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행을 통해, 사정이 딱한 젊은 청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와준 은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확신을 갖고, 멋있는 척을 다 하며 내 선택에 대해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었지만, 돈 빌려준 사람이 죄인이 된다는 듯, 돈을 빌려준 후 다신 돌려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도 상환기간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내 생각은 긍정적으로 기다렸다가 곧 이내 똥줄 타며 내 돈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하고, 그러다가 맘 편히 포기하자 생각도 하며 내 생각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약속한 상환기간에 A업체 대표는 연락이 없었다. 그때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떼인 돈 받는 법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사실 엄청난 큰 액수를 빌려준 건 아니었다. 이렇게 돈을 못 받으면 자선하는 셈 치고, 정신건강을 위해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딸 얼굴이 생각났다. 포기하는 그 돈이면 우리 딸한테 더 좋은 브랜드 옷,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기필코 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성실한 대표였으니, 곧 갚을 거라고 안심을 하며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빌려준 돈을 기다리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왜 빌려주었을까? 평소에 나는 보증을 잘못 서서 전 재산을 날리고 가정이 파탄 났다는 기사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가족이 있다면 내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이 우선인데, 가족과 상의도 없이, 남 돕자고 위험하다는 보증을 서고 바보같이 재산을 날려? 가족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그런데 그게 결국 나였다. 금액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내 사업으로 내가 번 돈 내가 빌려주는 건데 뭘? 이란 생각으로 남편에게 상의도 없이 돈을 덥석 빌려주었다. 이러다간 나중에 정말 보증도 서겠다는 위험이 감지되자 머리를 한 대 땡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돈을 빌려주는 일, 빌려주고도 자선하는 셈 치고 안 받겠다는 생각 등)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다 털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여기며 다신 금전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돈을 받을 때까지, 긍정적으로 기다렸다가 곧 이내 똥줄 타며 내 돈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하고, 아니 적어도 상환 날짜를 못 맞추면 먼저 연락을 해서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화를 냈다가, 그러다가 맘 편히 포기하자 생각도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생각과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요동쳤다.
그렇게 돈을 빌려준 지 6주~7주가 됐을 때, A업체 대표는 내가 빌려준 돈을 입금해 줬다. 빌려준 돈이 입금됐으니, 해피엔딩이냐?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