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보릿고개

요즘은 힘드네요.

by 김세무사


오늘도 사무실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 상담을 신청하는 카카*채널도 조용하다. 메일함엔 광고성 메일만 가득하다. 보릿고개다. 일이 없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날 기미가 보이며 돈을 쓸 때마다 통장에 얼마 남았는지가 계산되는 걸 보고, 아 이런 게 보릿고개구나 싶었다.


이 글을 보고 혹자는 전문직이 힘들긴.. 이라며 엄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전문직도 예전만 못하다는데 진짜군 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같은 전문직으로서 모양 빠지니 글 내려라라고 할 수도 있다. 정도와 기준의 차이가 있겠지만, 난 지금 보릿고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세무업은 시즌이 정해져 있어 바쁜 시기와 한가한 시기가 나누어져 있다. 연초에는 지난 연도의 수입과 이익을 정산, 마무리하여 신고해야 하는 작업으로 주로 상반기가 바쁘고, 하반기에는 한가하다. 물론 양도, 증여, 상속의 재산세 업무, 소명, 조사, 상담 등 용역 업무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물론 용역 업무로 1년 내내 바쁜 세무사가 있다. 하지만 용역 업무는 안정적이지도, 예측 가능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지금 나한텐 용역 업무가 많진 않다. 최근에 거래 성사에 실패한 용역 계약 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좀 더 엎드릴걸..)

작년 이맘때도 한가했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불안하지도,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정신승리) 그리고 무엇보다 통장 잔고가 넉넉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통장 잔고가 빠듯하다. 통장 잔고의 바닥이 보일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이번에 임대료, 사무실 유지비가 나가면 통장 잔고가 남아있을까 조마조마하다. 보릿고개 시절, 밥 짓기 위해 쌀을 푸는 엄마의 마음들이 이랬을까. 이번에 쌀을 퍼면 독 바닥이 보일까 조마조마 한 느낌. 결국엔 쌀 한 톨이라도 더 푸기 위해 쌀독을 바득 바득 긁어내는 엄마의 심정. 지금 내가 그렇다.

오른쪽 동물이 소로 보이는 걸 보니 난 스트레스가 심한듯


#지인 에피소드1

세무사 동기 중에 일찍 개업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세무사 개업이 꿈이었다며 합격하고 얼마 안 있어 바로 개업했다. 합격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모아둔 돈은 없는데,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대출을 받아서 사무실 인테리어를 어마어마하게 했다. 그 친구는 8월, 소위 비시즌 때 개업해서 고정적인 업무도 없을 때였다. 그렇게 소소한 수입과 막대한 이자비용, 사무실 유지비용으로 몇 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은 점심을 먹으러 돈가스 집에 갔단다. 그런데 돈가스 세트 메뉴가 먹고 싶었는데 통장 잔고가 생각나서 차마 2,000원을 추가해서 세트 메뉴를 시킬 수 없었다며, 통장 잔고만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고 하소연했었다. 다행히 지금 그 친구는 자리 잡아서 잘 나가는 세무사가 됐다.


#지인 에피소드2

대학원에서 알게 된 다른 업종의 전문직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개업 초반엔 많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도 직원은 필요하니 사업 초반에 경리 직원 한 명을 채용했다. 경리 직원이 첫 출근한 날 사무실 통장을 보니 잔고에 120만 원이 있었고, 사장님을 위해 내가 회사를 관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친구도 다행히 지금은 자리를 잡아서 직원 수도 많이 늘었고, 처음 채용한 경리 직원도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어떤 업종이든 3년만 힘든 시기를 버티면 된다. 3년을 버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시기만 지나면 성장 궤도를 달리게 된다”라는 책 구절을 읽은 적 있다. 이 글귀에 힘을 얻고 버텨왔는데, 웬걸, 이제 곧 개업 3년이 다 되어간다. 근데 이번 연도를 버틴다고 해서 뭔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눈앞이 캄캄하다. 처음 개업했을 때 세웠던 3년 후 내 미래와 현재 모습이 비교되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버텨야지.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처럼 안일하게 3년의 시간만 채우면 자리 잡길 기다렸던 나를 반성하면서.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의 지인 두 명은 본인 사업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 친구들이다. 그렇게 열심히 했기에 그 친구들도 과거의 어려운 시절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었겠지. 나도 지금의 보릿고개 시절을 재밌는 에피소드로 웃으면서 말할 날이 오기를 노력하며 기다려야겠다. 자리 잡고 곳간이 풍부해져서 인생 참 재밌네~라는 말을 나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쓰다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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