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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Oct 21. 2021

반추

2019.10.05

목요일에 영화 ‘조커’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면 망상이 하나의 장치로 등장한다. 망상 속에서 아파트 같은 층 건너편 집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아서, 토마스 웨인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페니. 영화의 결말은 어쩌면 페니의 망상은 망상이 아닐지도, 영화 전체의 사건이 아서의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서 망상에 빠져 있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누군가는 연민을, 누군가는 경멸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낀 것은 공감과 내가 공감한다는 사실에 대한 역겨움.


어제 자존감 테스트라는 것을 해보았다. 믿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5점 이상은 정상이며, 평균은 25점인 테스트라고 한다. 나는 –21점을 받았다.


누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때 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날 거에요.’ 나는 매일 망상 속에서 그런 존재들을 만난다. 그 세상에서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 세상의 모든 긍정과 행복을 삼킨다. 내 현실의 자존감은 –21점이다. 내 망상 속의 나의 모습은 현실의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양극성 장애.


무엇이 진짜 사실인지 끝까지 헷갈리는 조커의 내용처럼 나도 한 번씩 헷갈린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것은 가식과 연민인가, 진심인가. 영화 속에서 머레이가 아서를 자신의 쇼에 출연시키는 이유는 아서의 말과 같다. 그저 자신의 쇼의 흥행과 재미를 위해서였겠지. 머레이는 아서를 그저 한낱 미친 광대 나부랭이로 보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 복싱장에 다니기로 결심한 후, 가깝다고 생각한 몇 명의 인간들에게 이를 말했다. 반응은 다 똑같았다. ‘일주일 다니다가 때려칠 듯,’ ‘살 빼려면 그냥 헬스를 해라,’ ‘살 뺀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냐?’ 평소라면 웃어넘겼겠지만, 왠지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유도를 배웠던 중학생 때부터, 나는 단 한 순간도 살을 빼거나 외모를 가꾸기 위해 체육관에 다닌 적이 없다. 이들은 나를 그저 의지 약한 살 빼려고 안달 난 돼지 새끼로 보는 것이다.


‘인간 실격’의 구절처럼, 조커의 행동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였을지도 모르겠다. 실격은 누구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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