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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Dec 27. 2021

노이즈 캔슬링

평범한 겨울이었던 자정의 세상에서 들어섰던 터널 빠져나오자, 그곳은 새벽의 설국이었다.


몇 시간째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있다. 그저 평평하던 눈 바닥에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이 남겨진다. 내 신발 바닥이 저렇게 생겼구나. 내리는 눈은 쌓이고 있는가. 가로등의 불빛을 산란시키며 흩날리는 점들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각과 시간.


가로등은 혼자인 나만을 위해 켜져 있나 싶을 때쯤. 에어팟이 띠링 거린다. 꺼진다는 소리겠지. 곧 소리가 죽은 곳인 줄 알았던 세상의 소음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뽀드득, 뽀드득. 멈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들리지 않는다. 다시 걷는다. 뽀드득, 뽀드득. 내가 걷는 소리였구나. 내가 눈을 밟으며 걷는 소리. 세상의 반향을 차단하며, 청각으로 분리시킨 나만의 세상에는 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허전해서 에어팟은 귓구멍에 꽂아놓는다. 청각과 공간.


어느 순간 뽀드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자국 위로 내 발자국이 겹쳐진다. 이미 밟혀 압축된 눈 바닥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 혼자가 아니다. 당연한 소리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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