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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Dec 28. 2021

슬픔의 관계학

나는 어릴 때 눈물이 많았다. 그냥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눈물이었다. 누나와 엄마에게는 놀림의 대상이었고, 아빠와 할아버지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울어야 한다는 이상한 공식과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은 나를 잘 울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슬픔과 눈물 사이의 중요한 관계성은 표현이고, 그의 역할은 노출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다. 배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슬픔은 눈물로 배출되어 작아지기도 하니까.


나는 눈물을 잃으면서 표현도 잃었다.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표현은 무뎌진 칼처럼 되었다. 생각과 감정을 잘라내지 못했고, 배출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이  안에 갇히게 되어 썩어갔고, 쓸데없는 생각과 긍정적인 감정은 짐짝이 되어 구석으로 던져졌다. 서투른 표현을 하는 것은  하느니만 못했다.


부족하지만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와 위의 핑계는 같다.


울지 않는다고 슬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환호하지 않는다고 기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과하지 않는다고 잘못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감사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내가 눈물이 많았던 것은 아직 미성숙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틀린 생각이다.


그때는 단지 어렸을 뿐이었고 미성숙한 것은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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