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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Apr 16. 2022

bah humbug

2020.02.08

살면서 엄마한테 죽도록 맞은 적이 몇 번 있는데, 그중 한 번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유희왕 카드를 사고 싶어서 엄마 동전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하나를 슬쩍하다가 걸려서 개처럼 맞았다. 분명히 잘못한 행동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우리 집에 대한 생각은 가난함이었다.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가져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가족여행의 여행지는 김해다. 그날 우리 가족은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나와 누나의 교육에 관해서는 아끼지 않으려고 부모님이 항상 노력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외의 모든 것에 관해서는 최대한 아꼈던 부모님도 같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들 기죽지 않게 한번씩 무리해서라도 사주시던 엄마가 마지막 기억이다. 초등학생 때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문방구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살면서, 대학에 입학해서도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산 적이 몇 번 없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은 많았다. 사실 돈도 있었다. 용돈을 받아 생활을 해도, 아껴 써서 모은 돈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항상 사는 것이 망설여졌다. 돈을 쓰는 모든 것이 과소비와 사치로 느껴졌다. 그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절약이라고 생각했다.


강사료를 받는 드림 클래스에 합격했을 때, LG 디스플레이 인턴 월급이 나왔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며 밥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활동비가 따로 있는데, 월급까지 받으면 개꿀 아니에요?’라고 말했던 월급은, 그런 말을 했던 아이들을 위해 대부분 다 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아깝지는 않지만, 내가 너무 멍청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지만 돈은 없을 때, 무리해서 사는 것은 과소비이다.

돈은 있지만 가지고 싶은 것은 없을 때, 굳이 무언가를 사는 것은 사치이다.

하지만 가지고 싶은 것이 있고 돈도 있을 때, 사지 않는 것은 절약이 아니다.


얼마 전 에어팟 프로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 너무 좋았다. 사실 이전부터 에어팟을 가지고 싶었지만, 애써 아닌 척하며 참고 있었다. SK 하이닉스 인턴 월급을 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돈이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은 에어팟 프로였다. 너무 비싸서 오래 망설였지만, 결국 주문을 했다. 사실 주문을 완료했을 때, 속이 진짜 너무 후련했다.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해치운 기분이었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신발도 꼭 살 거다.


초등학교 6학년, 그때 내가 했던 커다란 잘못이 어떠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나 보다. 사실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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