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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05. 2017

'Better Life'를 찾아서(3)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주인공(카를로스)은 아들(루이스)과 면회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너를 왜 가졌는지 물었지? 내가 사는 마을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살았어. 그러다가 노비아(아이의 엄마인 듯)를 만났고 결혼을 했단다. 그리고 북쪽(미국을 의미)으로 갔다.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으니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미국)에 왔고 너를 가졌지. 왜냐고? 네 엄마와 나는 무척 서로 사랑했단다. 


- 그런데 사람은 변하는 거더라. 그리고 이곳은 모든 게 다르더군. 네 엄마도 변했지. 네 엄마는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어. 그렇게 네 엄마는 떠나갔어. 그리고 나는 너와 함께 외롭게 남게 되었다. 돈도,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어린 너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분노로 가득 찼지만, 내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가 있기 때문이었다. 너를 돌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네가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었으니까. 


- 너만은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랐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지. 네가 누군가가 된다면 그게 바로 너를 가진 이유다, 내게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네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는데. 네게 잘못해서 미안하다.


(원 대화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You asked me why I had you? You know, back in the village, you just did what any man would do. You found a novia. got married, and then you headed north. And that's what I did, because I didn't know any different. So we came here. And then, we had you. Why? Because your mother and I loved each other very much. But then, people change. And things were different here. Your mother changed. She wanted more than I could give her. So, she went away. And I was left alone with you. I didn't know how I was going to manage with a small boy, with no money and no regular job. I had a lot of anger inside me. But the thing...... The one thing that helped me get over all that was you. To be able to take care of you, and watch you grow. Because I love you. You are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is world to me, mijo. I wanted you to be able to be anything you wanted to be. That would make me feel worthy. If you became somebody, that's why I had you. For me. For a reason to live. I'm sorry about this. I wish you didn't have to see me like this. I'm sorry about failing you.)


'A Better Life'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 불법 이민자 '카를로스'의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은 한글간판이 자주 보이는 LA로 공항 주변의 낯익은 모습도 보였다.


LA만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뉴저지에서도 흔히 보는 불법 체류 멕시칸의 스토리는 이렇다. 카를로스는 트럭을 갖고 가드닝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고용되어 일하면서, 방이 하나뿐인 작은 아파트에서 14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루이스는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아버지를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트럭 주인은 트럭과 함께 가드닝 비즈니스를 성실한 카를로스에게 팔려고 하나, 카를로스는 그만한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면허증도 합법적인 서류도 없다. 이민 변호사에게 속아 돈도 서류도 다 날린 경험만 있다.


여동생 아니타의 도움으로 트럭을 사서 트럭과 비즈니스 오너가 된 카를로스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 있는 뜨내기 멕시칸들 중에서 산티아고를 픽업하여 일터로 향한다. 그러는 중에 뜨내기에게 트럭과 모든 연장들을 도둑맞는다. 일하러 팜트리에 올라간 사이 산티아고는 트럭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LA에서 살 때 이런 일이 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과 함께 어렵게 찾은 산티아고는 이미 트럭을 암시장에 팔아 돈을 자기 고향에 송금한 뒤였다. 자신의 트럭이 있는 곳을 몰래 찾아 들어간 카를로스는 아들과 함께 트럭을 찾아 나오지만, 환희에 차서 돌아오는 길에 경찰의 단속에 걸리고 불법체류자로 밝혀져 멕시코로 송환된다.


송환되는 날, 면회를 간 아들 루이스와 잠깐 동안 허락된 시간에 카를로스가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계속된다.


- 아니에요, 아빠는 내게 잘못한 적이 없어요. (No. You never failed me.)


- (관리의 재촉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잘해준 적이 없다. (I was never there.)


- (눈물을 흘리며) 아빠는 언제나 제게 잘 하셨어요. (You were always there. Always.)


- 루이스, 아니타 고모에게 가있겠다고 약속해 줄래?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면 잘할 거라고 약속해 줄래? (You promise that, okay?)


- 아빠, 돌아오겠다고 약속 해!


영화 속에는 카를로스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으로 묘사되고 그런 아빠를 한심하고 못나게 생각하는 아들과 갈등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한심하고 못난 바보라고 생각하는 아들과,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미국 시민으로 당당한 사람이 되어 떳떳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아빠와의 갈등이다.


또한, 카를로스가 일하는 부자들의 아름다운 정원, 캘리포니아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의 남루한 모습을 오버랩하여 대조시키는 영상처리가 대조되어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준다.


루이스는 새로운 학교에서 밝은 모습으로 축구를 하고, 카를로스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과 석양 속에서 국경을 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강제 송환되는 버스에 오르면서 먼발치 철조망 밖에 있는 아들과 여동생을 보고 있는 카를로스>


보다 나은 삶(Better Life)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그것을 그곳에서 찾았을까?라는 질문을 영화는 던진다. 더 나은 삶을 찾아왔건만, 이혼하고 자신의 생명이자 희망인 아들과는 같이 보낼 시간도 없이 주 7일, 일만 하고 사는 카를로스는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게 무언지에 생각이 미친다. 보다 나은 삶이란 업그레이드(Upgrade)되는 삶일 것이다. 현상이 유지되는 삶을 찾아 이민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삶이 그것일까? 보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더 많은 자유를 구가하며 사는 것일까? 미세먼지나 공해가 없는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것일까? 법과 질서가 잘 구비된 나라에서 내 권리를 남에게 침해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자 최강의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일까?


이런 가정을 해본다. 미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한국은 몇일까?라는 가정이다. 60년대의 한국은 10이나 20, 70년대는 30에서 40, 80년대는 50에서 60, 90년대는 70, 2천 년대는 80 정도 된다는 가정이다. 60년대의 이민은 더 나아질 삶의 여지가 8~90에 달했으나, 지금은 그 간격(Gap)이 점점 작아져서 10이나 20밖에 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나 인도 또는 남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민으로 삶이 '더 나아질만한' 갭이 크지만, 한국인에게는 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3~40 년 전에는 한 해 수만 가정이 떠났던 이민이 최근에는 몇 백 가구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든 이유일 것이다.


차이가 큰 만큼 이민으로 얻어지는 삶의 나아짐도 큰 베트남, 필리핀, 인도, 중국인들은 그로서리에서 음식점에서 가스 스테이션에서 주 7일,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기꺼이 일한다. 과거의 한국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 이번에 갔더니 친구들이 별로 만나지 않더라고. 예전에는 적어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집에서 바비큐도 하고 아니면 음식점에서 모여 어울렸던 동창들이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더라.


얼마 전에 미국을 다녀온 도치 형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이 예전처럼 여유가 없어진 거야. 이제는 비즈니스들도 별로 재미없고, 다들 은퇴해서 서로 돈이 없으니까 백 불 이백 불도 아까운 거야. 생활비도 빠듯해서 살기도 힘드니까 만나는 것도 서로 피한다는 거지. 옛날에는 돈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돈은 없고 시간들만 있어! 옛날에는 돈 버느라 바빴고 쓸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었는데 말이야.



<후기>

파랑새를 쫓아 자기가 살던 정든 땅을 떠나 언덕 너머의 낯선 땅으로 파랑새를 잡으러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파랑새를 찾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요.


1975년 파라과이로 농업이민을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습니다. 화곡동 국군 통합병원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밭농사를 크게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야트막한 야산으로 밭이었던 곳이 지금은 유흥업소가 잔뜩 들어선 번화가가 되었더군요.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만약 그 친구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부동산 재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파랑새는 아니겠지만, 손에 쥐고 있던 파랑새는 날려 보내고 엉뚱한 곳에 가서 찾지 않았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미국에서 아이들을 살도록 한 것이 유일하게 잘한 일 같습니다. 그곳에서 자라 그곳의 문화가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요. 돌아와 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만, 제게는 한국이 더 친숙하고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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