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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y 26. 2017

노룩패스

No Look Pass

남성은 과거지향적이고 여성은 미래지향적이라는 심리학자의 분석이 있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거다. 남자라서 그럴까, 과거에 너무 집착한다는 말을 가끔 듣곤 한다.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모든 사람은 과거로부터 왔다. 즉 과거가 현재의 모습을 만들고 있게 한 것이지 미래는 아니다. 따라서 현재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문제도 원인을 모르면 고칠 수 없기에 문제 해결에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시간이지 미래는 아니다.


평생 검소한 것도 과거의 어려움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반면에 내 아이들을 포함해서 요즘 젊은이들이 아낄 줄 모르는 것은 풍족한 시대를 산 탓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단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지난 시간에 분명히 존재한다.


박근혜가 대통령 시절 최순실에 의해 놀아난 것도, 말도 안 되는 국정농단을 저지른 배경도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최태민과의 조우가 원인이 되었고,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본받고 배운 것이 그랬다. 아버지가 삼선(三選)만 하고 말겠다고 전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유신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헌신짝처럼 저버렸듯, 그녀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기편만의 대통령이 되었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버리고 ‘최순실 행복시대’를 만들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과거를 바라보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깨달았다.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과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사람이다. 박근혜가 전자라면 문재인은 후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정권을 시작하자마자 개혁적인 인사의 등용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쇠는 뜨거울 때 달궈야 한다고 했던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80%가 넘는 지금이 적기다. ‘평검사들과의 대화’ 같은 어설픈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어제는 김무성 씨의 ‘노룩패스’가 화제가 되었다. 미국 뉴스만 보는 아들도 오늘 아침에 이것을 알고 있었다. CNN에서 보았다고 했다. 밤사이에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한국의 갑질(Gapjil)’을 설명하는 예로 인용되었다고 한다. 축구나 농구 경기에서나 봄직한 것을 일상에서 응용한 것이지만, 이 한 장면으로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짐작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연상되는 흡사한 장면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1차 영장심사에서 구속되지 않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구치소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쪽문을 나오는 순간 곁눈질도 없이 마중 나온 수행원에게 손가방을 주저 없이 내미는 장면은 갑남을녀에게는 어색하게 보였다. 평생 수행원을 거느리고 살아서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싫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제주에 사시는 도치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형님의 조카 가운데 한국 대기업 집안의 장손이 있다. 그 조카가 모처럼 한국을 방문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대기업에서는 차량과 운전수를 비롯해서 수행비서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성장한 조카는 그게 너무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서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다시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형님의 아들이 졸업 후 처음 취직한 곳이 ‘삼성 USA’이었다. 하루는 상사의 명령으로 한국에서 오는 높은 분을 픽업하러 공항에 갔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높은 분은 자신의 손가방을 아들에게 내밀었으나, 아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주 당연하게 거절했다. 그 아들은 지금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듯 금수저들의 갑질 체질화(?) 내지 일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한항공 조현아의 회항이나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의 진상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김무성이나 이재용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이런 황금수저들의 공통점은 박근혜처럼 과거의 권력과 영광에 집착할 뿐,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안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요정을 차려놓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해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봉건시대의 군주처럼 침실에서 근무하고 혼밥을 하며 대면보고를 꺼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는 것, 입는 것에도 그렇게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끼고 차고 들고 다니는 것이 싫다. 결혼반지도 며칠 끼고 다니다가 불편해서 빼버렸었고 시계조차 차지 않은지 아주 오래되었으니 들고 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흑수저 출신으로서 맡길 수행원이 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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