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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Oct 10. 2017

일식과 일출

여수 앞바다의 일출을 보며

(지난 9월 2일 작성한 글)


몇 년 전의 일이다. 제주의 어떤 저택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천지연폭포 입구에서 바다 방향으로 나와 오른쪽 언덕을 올라 외돌개로 가는 길의 왼쪽, 바닷가 높은 벼랑 위 1,500평의 대지에 자리 잡은 집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이었다. 거실에서 바다를 향한 남쪽 전면을 최대한 크기의 통유리로 장식해서 시야에 어떤 방해도 없이 시원했다.


다섯 채의 농가주택을 구입해서 얼마나 공들여 지은 집인지에 대한, 서울에서 건축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내 또래의 집주인의 설명이 없더라도, 한 그루도 범상치 않은 모습의 정원수와 정원석을 보고 수십억이 들었을 거라고 짐작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집주인은 그저 거실에 들어앉아 탁 트인 바다를 마음껏 즐기면 되었다.


질투인지는 모르겠다. 아무 노력도 없이 매일 바라보는 바다에서 어떤 감흥을 느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 물론 당시의 집주인은 은퇴하지 않았으니 서울에서 제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자기 집까지 가는 수고는 필요했을 거다. - 보통사람들은 바다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수일 전에 예약하거나, 교통체증으로 막히는 고속도로를 몇 시간씩 운전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거실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바다와 몇 시간씩 고생해서 보는 바다가 같을까.


이십 수년 전에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강변의 고층아파트에서 우울증을 앓는 노인에 대한 기사로,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노인들이 한강을 쳐다보면서 증세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들에게 한강이 바라보이는 아파트는 좋지 않다고 뉴스가 전했다. 집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전망(View)도 사람과 경우에 따라 없느니만 못하기도 하다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산에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보는 꽃도 다르다. 힘이 들어 헉헉거릴 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이름 모를 꽃도, 여유를 부리며 내려갈 때는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똑같은 풍경이나 꽃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꽃도 아니고 달라진 풍광도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경치가 다른 이에게는 일생일대의 대단한 기억이 된다. 아프리카인이 보는 설악산의 설경이 그렇고, 한국 사람이 케냐의 끝없는 초원을 달리는 누(Gnu) 떼를 보면 그렇다.


지난주에는 미국에서 발생한 개기일식(Total Solar Eclipse)으로 떠들썩했다. 90년 만에 나타난 자연현상이라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보름날 밤의 개기월식은 언젠가 본 기억이 있지만 해가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대낮의 개기일식은 평생 구경한 적은 없다. 대낮에 컴컴해지는 현상이 개기일식만은 아니지만 장관이었을 거라고 추측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자연의 장관이 개기일식만은 아니다. 매일 벌어지는 일출도 그에 못지않은 장관이다. 어둠을 밀어내고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이 결코 개기일식보다 못하지는 않겠지만, 매일 보는 현상이기에 100년 만에 볼 수 있는 개기일식에 밀리는 것은 아닐까. 희소성은 무엇보다 가치 기준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자. 일출을 보면서 매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평생 한 번 겪는 일식을 보고 희열을 만끽하는 사람은 누가 더 효율적이고 행복을 느낄까. 아인슈타인처럼 일식 현상에서 빛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과학자라면 다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친절합니다. 지금까지 6년을 살면서 이상한 사람은 딱 한 번 경험했어요. 언젠가 무슨 산에 가서 저 사람 사진을 찍는데, 옆에 있다가 찍힌 사람이 말도 없이 자신을 찍었다고 화를 내며 시비를 거는 거예요. 젊은 사람이었는데 나이 많은 우리가 무조건 사과했어요. 사진도 바로 지우겠다고 했더니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더군요. 사진 찍을 때 ‘하나, 둘, 셋’하고 찍었거든요. 그리고는 불쾌했던 기억이 별로 없어요.”


며칠 전 이민 선배님으로부터 들었던 대답이었다. 여수에서 6년을 살다가 일이 생겨 떠나시는 그분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었다. “선배님, 한국 사람들 대체로 친절하지 않나요? 저는 그렇다고 보는데, 한국인들은 아직 멀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아요.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964년부터 40년 훨씬 넘게 미국에 사신 분의 말씀을 부정만 할 수도 없다.


개기일식은 어쩌다 있는 자연현상이고 우연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개기일식을 경험했다고 해서 매일 같이 태양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불친절하거나 괴팍한 사람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이 평범한 진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하고 친절하다. 이혼했다고 모든 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는 것도 어리석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가 어떤 괴팍한 사람을 만나 기분 상했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을 폄하하듯 말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등산을 하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 십중팔구는 같은 표정과 말로 응답한다. 어떤 사람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과는 다르게 행인이 많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기에 알맞다. 미국에서 산책하다 만나는 사람에게 ‘Hello’하는 것은 그만큼 마주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복잡한 도로에서 만나는 사람마다‘Hi’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 틀림없다. 파리나 런던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인의 인사성이 유독 밝은 것도 아니며, 동양인이 유전적으로 불친절한 것도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제주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혼자 올레길 18코스를 걷고 있었다. 사라봉을 지나 바다를 향해 돌계단을 걸어 내려갈 때, 30대로 보이는 백인 여성이 몸에 붙는 운동복 차림으로 배꼽을 드러낸 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폭이 좁은 길이라서 그 여인의 조깅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길 오른쪽에 비켜 서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우측보행 규칙을 지키지 않고 굳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엉겁결에 인사를 건넸다. “Hello, how’re you doing?”


그녀가 대꾸했다. “Get out of my way!”


▼ 조깅하면서 아침마다 만나는 일출의 모습. 이보다 더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이 또 있을까. 결코 개기일식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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