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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Nov 26. 2023

여섯 번째 - 요리는 눈으로 배운다

요리라고는 전자레인지로 돌려서 끓인 라면 하나 뿐이었다. 그릇에 면과 스프, 후레이크를 다 넣고 물을 부은 뒤, 랩이나 비닐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돌리면 끝이 나는 초간단 레시피다.


이런 요알못이 지금은 밑반찬부터 국과 면요리까지 폭넓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좋아했던 아이돌의 여행 예능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돌 중, 유일하게 요리를 좀 할 줄 아는 멤버가 주방으로 들어가서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면서 나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를 하거나 찾아본 것도 아니었다. 봤던 걸 떠올리며 하나씩 해나갔을 뿐이다.


그때는 시판용 소스와 파스타면을 사서 면을 삶은 뒤, 그 면에 소스를 뿌렸었다. 면을 소스와 비벼서 먹었는데, 이건 무슨 비빔면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이 없었다.


편집으로 인해 얼굴과 요리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다 보니 그땐 제대로 못봤던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만들 때는 익힌 면을 꺼내서 프라이팬에 소스를 넣고 볶듯이 해봤는데, 맛있었다.


매번 사먹기만 하던 떡볶이를 파스타 때의 그 아이돌이 야식으로 만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게 된 어느 날이었다.


그걸 본 나는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재료는 어묵, 떡, 파까지 있었다. 그 영상을 유튜브로 틀어놓고 없는 재료는 넘긴 채 똑같이 따라했다.


그 결과, 첫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떡볶이를 현미떡으로 만들고, 라이스페이퍼로 만들기도 하고, 설탕은 스테비아로 대체하면서 건강한 음식으로 해먹곤 한다.


예전에 아이돌 요리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었는데, 예선전에서 수란과 지단을 만드는 모습은 놀라웠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은 지단이 뭔지, 수란이 뭔지 몰라서 속이 타들어가고 여기저기 물어보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안에서 잘 만들어가는 아이돌들의 모습을 보며, 지단을 한 번 만들어 봤었다. 노란 빛깔로 어떻게 그리 곱게 잘 만들었는지 신기하면서도 나는 왜 그렇게 안 되는 건지가 의문이었다. 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릇노릇 잘 익어서 맛은 있었다.


그렇게 요리를 하나하나 하다 보니 요리가 즐거워졌고, 재밌어진 나는 덕질이 아니더라도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에 장염 걸렸을 때, 만들어본 닭가슴살 죽.

야채(당근, 버섯, 양파 등)를 잘게 썰어주고, 밥솥에 있는 밥과 물을 넣어 끓였다. 간은 참치액, 간장 또는 소금, 후추로 했다. 닭가슴살은 해동하고 칼로 썬 뒤에 다 익고 나면 찢어서 넣었다.


흰죽, 계란죽만 할 줄 알았던 죽 레시피에 닭가슴살 죽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맛은 아픈데도 잘 들어갈 만큼 맛있었다.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다.


분명 간을 했는데, 간이 안된 것 같은 계란국. 후추도 넣고 소금도 넣었는데, 왜 아무 맛도 안 나는지 만들고 나서 먹을 때마다 신기했다. 계란향이 첨가된 따뜻한 물 같았달까.


여기에 차례 지낼 때 썼던 황태를 혼자 손질법도 안 보고, "이러면 되겠지. 최종으로 보는 모습은 이거잖아." 하며 머리와 껍질을 제거하고는 손으로 황태를 찢었다. 계란국 때보다 훨씬 맛있었고, 황태 덕분에 맛이 우러나서 그런지 먹을 때마다 리필하게 된다.


어제는 묵도 한 번 만들어 봤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묵가루 한 컵당 물 다섯컵 반의 비율에 맞춰 넣고 소금 살짝 넣은 뒤에 열심히 저었다. 끓어오르고 덩어리 지는 게 느껴질 때쯤, 들기름을 한 바퀴 반 정도 둘렀다. 불을 약간 줄이고 다시 휘저었다.


그 결과 좀 더 묽어야 되지 않나? 싶은 묵이 나왔다. 응고되지 않은 상태의 묵은 도토리묵의 향이 세게 느껴지면서 기름의 고소한 맛이 난다. 너무 맛있었는데, 응고된 이후의 묵은 탱글탱글해서 젤리 같았다. 젓가락으로 찔러도 부서지지 않고 쪼개지지 않는 게 "정말 내가 만든 게 맞나?" 싶었을 정도로 맛있었다.


묵을 만들 때 주의할 점은 쉬지 않고 빠르게 저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럼 탈 수 있고 눌어붙기도 한다.


처음에는 재미보다 덕질 때문에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젠 즐겁게 하고 있고 처음보다 많은 메뉴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느낀 건, 눈으로 배운 요리를 따라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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