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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Dec 14. 2022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1일 1 브런치까지는 무리입니다만,

더러운 쓰레기가 예쁘게도 내리는 날. 그 모습을 지켜볼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쁜 날을 살아가지만 사실 그랬다. 미세먼지 잔뜩 심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것이, 그 모습이 아무리 예쁘다한들 진정으로 예쁠까. 그저 피해야 하는 쓰레기임이 현실일 뿐이다.



나는 지금 이런 사람이 되었다. 눈 내리는 겨울의 환상적인 모습에는 전혀 감흥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봄부터 준비했던 신춘문예를 망쳤다. 제출기한까지 제출 편수를 채우지 못해서 결국 제출하지 못하였다. 원인은 나의 게으름이지만 현실은 실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일 년 농사 말아먹은 기분이다. 사실 종종 신춘문예에 도전을 하지만 매번 떨어지고 마는 탈락의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보니 당선이 될 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는 건 아니고 다만 언젠가는 될 거라는 희망 덕분으로 나는 글을 쓴다. 신춘문예가 아니어도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작가 되기의 고전인 신춘문예가 그냥 좋아서 연말이면 신문사들의 모집요강을 들여다본다.


내 마음대로 마음 내킬 때 쓰이는 글들이 경쟁작들과 함께 놓여있을 것을 상상하면 당당함은 어디에도 없어지고 낯 뜨거운 부끄러움이 올라오지만 그 낯 뜨거운 부끄러움으로 나는 다시 글을 쓸 용기를 낸다. 막상 글을 쓸 때에는 낯 뜨거움도 부끄러움도 모른다. 머리와 마음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대통합의 순간 나의 글을 쓰며 나는 희열을 느끼고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위로하는 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내 글의 시작이 치유였고, 내 글의 과정이 위로임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보니 너무나 객관적인 사실임을 확신한다. 모든 글에는 솔직함이 드러나고 그 솔직함 하나가 치유도 위로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글쓰기를 게을리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게을렀던 그 시간 동안 치유할 마음의 상처도 위로할 고통도 나에게 없었다.



나의 글은 상처의 치유와 고통에 대한 위로가 목적인 글이 대부분이어서 자기 위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덕분에 정신적인 위안을 많이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글들이 많다. 그걸 알지만 나는 또 그런 글들을 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치유하고 위로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계속 그런 글 들만 쓰겠다는 의지는 아니다. 다양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근데 나는 지금 왜 이런 성토의 글을 쓰고 있는 거지? 그저 게으름을 버리고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을 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왜 고해성사의 글이 되어가는 것 같을까?(또 이렇게 천편일률의 글이 되는구나.)




처음부터 작가의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는 재미를 알고부터 작가의 꿈을 꾸었다. 작가가 되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럼에도 삶의 의욕을 놓지 않기 위해서 꾸준하게 꿈으로 붙잡아 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아무튼 간에 나는 꾸준하게 글을 쓰기로 했다. 사라진 나의 감성을 되찾아야만 한다.


" 1일 1 브런치는 무리입니다만, 꾸준하게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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