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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Feb 10. 2020

노력

에이~ 너 열심히 안 했네

서로 알고 지낸지 16년이 된 친구들은 언제 보든 반갑다

각자의 일로 바쁘게 지내다 오랜만에 모여도 여전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항상 붙어 다녔던 우리는

게임 얘기, 숙제 얘기, 이성 얘기를 지나쳐

어느덧 만나면

월급 얘기, 정치 얘기, 미래 얘기를 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해 만날 때마다

자신이 먼저 카드를 꺼내는 그 친구는

돈을 덜 받더라도 편한 일을 하고 싶단다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겪어보니

제일 도움되던 게 자격증이었다는 그 친구는

열심히 자격증의 가치에 대해서 떠들곤 했다


문득, 예전에 학교 생활 틈틈이 준비해서 도전했지만

아쉽게 1점 차이로 떨어졌던 기사 시험이 생각났다


"아아 예전에 1점 차이로 떨어졌던 기사시험 생각나네"

"뭐야 실기시험?"

"아니 필기부터 1점 차이로 아깝게 떨어졌지 뭐야"

"에이 뭐야 너 열심히 안 했네"


........ 맞다 내가 열심히 안 한 거다


여태껏 누구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아는 대학 친구들은 

기사시험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치부했고

나조차도 시험에 떨어진 것에 대해 크게 감흥이 없었다


물론 나는 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교내 활동을 더 열심히 했고

공모전에도 나갔고, 블로그 활동들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기사 시험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당연스러운 일침을 맞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되뇌어 보니

맞아. 내가 열심히 안 했구나 싶어 괜히 웃음이 낫다


여태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친구들도,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남들은 충분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것밖에 못 해내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실망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직 내가 열심히 안 했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 열심히 안 했다"라는 말이

"뭐야 너 아직 더 잘할 수 있잖아"로 들린 건 기분 탓일까


그날도 어김없이 카드를 먼저 꺼내는 친구를 밀치고

먼저 계산한 2만 5천원은 나름의 수업료였다는 것을


친구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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