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예정일을 일주일정도 남겨둔 어느 날, 나는 짝꿍이 내는 신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왜그러냐 물어봤더니 아내는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진통이 왔나싶어 살펴봤으나 진통 간격이 불규칙하고 예정일도 아직이라 가진통이라 생각했다.
새벽이었지만 걱정되었던 나는 산부인과 의사를 하셨던 장인어른께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장인께서도 진통이 출산을 앞뒀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고 하셨다.
아내의 진통이 곧 잦아들었고 우리는 일단 다시 잠에 들기로 했다.
잠에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신음소리가 다시 나를 깨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규칙적인 시차를 둔 진통이 찾아온 것이다.
규칙적이긴 했으나 20분 세 번, 10분 네 번, 이런 식으로 진행이 너무 빨랐다.
다시 장인께 전화를 걸어 여쭤보니 특이하지만 진통이 맞는 듯하니 병원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새벽 한 시경 나는 배 아픈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새벽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보통은 정체 때문에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20분 만에 주파했다.
병원에서 확인을 해보니 진통이 맞았다.
덤보가 세상에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짝꿍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주었다.
그러고 우리는 의사를 기다렸다.
굉장히 빨랐던 진통 속도처럼 자궁문도 빠르게 열렸다.
네 시쯤에는 담당 의사도 병원에 도착했다.
자궁문도 충분히 열렸고 이내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었다.
출산의 고통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간호사들이 알려주는 호흡을 하면서 용을 쓰는 아내의 표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대부분의 것들을 잘 봐 넘기는 나로서도 아내가 아파하는 모습은 바라보기가 괴로웠다.
내 아내의 출산은 단연코 내 삶에서 가장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힘들고 아프기만 했으면 괜찮았겠으나 곧 문제도 생겼다.
아내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진통의 지속시간이 너무 짧아 힘을 줄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진통이 충분히 길게 와줘야 자궁문이 충분한 시간동안 이완되는데 너무 짧게 지속되어버리니 아내가 힘을 충분히 주기도 전에 닫혀버리는 것이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아이의 맥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 분당 100회까지 떨어졌을 때 의사는 아이를 강제로 꺼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맥박이 더 떨어지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흡입 분만에 동의하냐고 하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동의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서명을 했고 의사는 흡입 분만을 시작했다.
의사는 회음부를 크게 찢은 후 아기 머리에 흡착판을 부착시켰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진통에 오면 있는 힘껏 힘을 주라고 지시했다.
곧 진통이 다시 찾아왔고 짝꿍과 의사는 힘을 맞춰 아이를 꺼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덤보는 건강하게 세상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출산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다.
모든 엄마는 대단하다는 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난산으로 출산에 이틀씩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사로 들었으나 이제는 감흥이 달랐다.
출산하다 죽는다는 이야기도 과장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아내는 진통이 시작되고 약 5시간 정도 후 덤보를 안을 수 있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었으나 그래도 짧았다.
이 괴로운 과정을 오랜 시간 겪어도 되지 않아서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으면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다.
덤보 탯줄은 내가 잘랐다.
의사 권유로 자르는 사진도 찍었는데 워낙 경황이 없어 시키는대로 했지만 다음에는 아내가 정신을 차릴때까지 아무 사진도 찍을 생각이 없다.
당시 정신없던 와중에도 출생의 순간에 사진이나 찍고 있는게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3일 새벽 4시 반, 우리는 처음으로 덤보를 만났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고생한 아내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
게다가 아내는 아파서, 나는 나대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아기가 신기하기는 했지만 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감동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은 어색했다.
당시에는 이게 이렇게 무덤덤할 일인가 싶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곧장 사랑을 느끼는 것이 더 이상하긴 하다.
우리는 아직 초면이고 아무것도 함께 나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유명한 옛 말이 있다.
인생을 함께 하면서 쌓이는 정이 더 무서운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두 돌 된 우리 아기는 아빠에게 종종 차갑다.
이미 아들을 향한 사랑에 빠진 아빠는 홀로 상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출산에는 부작용이 따랐다.
보통 산모들은 2주면 회복한다는데 아내는 무려 6주간 고생을 했다.
4주가 지나도록 아내는 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했다.
고약한 냄새도 나기 시작했다.
불편했지만 출산 후 4주 뒤 담당 의사의 검진이 예약되어 있어 우리는 다른 의사를 찾지 않고 기다렸다.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검진은 담당 의사의 갑작스러운 휴가로 펑크가 나버렸다.
인도네시아 리스크가 터진 것이다.
원래 인도네시아에서는 갑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약속이 파토나는 일이 잦기는 하다.
그러나 의사까지도 그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다.
결국 우리는 가까운 병원을 찾았고 회음부를 잘못 꿰맨 게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절단된 살을 접합할 때는 양쪽 절단면을 완전히 맞춘 후 꿰메야한다.
절단면이 어긋난채로 꿰메게 되면 폴립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폴립은 악취를 동반한 통증을 일으킨다.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간단한 치료 후 금방 나았다.
그냥 빨리 병원을 찾을 것을 괜히 고생했다 싶었다.
산부인과 의사셨던 장인어른도 그 정도도 못꿰메는 XX는 의사도 아니라며 극대노 하셨다.
덤보에게도 작은 부작용이 있었다.
진공 펌프를 머리에 붙여 꺼내는 과정에서 머리 모양이 찌그러진 것이다.
약 두어 달 정도 찌그러진 모양을 유지했는데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지금은 이쁘게 동그란 두상을 가진 귀여운 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