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둘이 셋이 되는 과정

by 덤보아빠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어느날 아내는 임신을 했다.


이전에도 임신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엄청나게 피로해하기 시작했고 예정일이 지나도록 생리를 하지 않았다.

임테기 테스트 결과 희미한 두 줄이 나왔다.

그러나 며칠 지나기도 전에 생리가 터졌다.

유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선명한 두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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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임테기에 두 줄이 뜬 사진을 보내온 날 나는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철 없었던 당시의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 굳이 이 사실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날 이야기 했어야 했나 싶었다.

결혼을 하고는 인도네시아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내를 보필하느라 친구를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 겨우 한 번 날을 잡았더니 그마져도 아내가 방해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기다렸다 집에 가서 알려줬다면 함께 기뻐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아쉬웠다.

그날 나는 술을 엄청 마시고 들어갔고 며칠간 우리는 냉랭한 시간을 보냈다.




시작은 나빴지만 관대하게도 아내는 나의 사죄를 받아줬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태교는 출산 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태교가 아이의 학업능력, 성품, 키, 외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유사과학계에서 비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 역시도 태교를 했다.

클래식을 듣고, 독서를 하고, 사이코패스 금사빠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존윅을 봤다.

만삭때는 발리로 태교 여행까지 다녀왔다.


우리 아이는 훌륭한 아이로 자랄 것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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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몸은 참으로 불편한 것이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치는 일로 보인다.

의지와는 별개로 호르몬에 지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new-girl-murder.png 생리하는 여자가 느끼는 감


임신을 하면 이 귀찮은 생리를 안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리를 하지않는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에 있어 삶의 질이 하락한다.


아내는 어떤 자세로 있어도 불편해했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는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었다.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팠다.

임신 전에 아내는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몸이 무거워지고 피로감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운동도 그만두게 되었다.

기껏 조금 붙기 시작한 근육은 이내 곧 다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 외에도 임신에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

피부가 너무너무 좋아진다.

원래 피부가 좋았던 아내지만 임신을 하면서는 광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출산과 동시에 우리 아들은 그 모든 생기를 다 뺏아 가버렸다.

아내의 피부는 곧 모든 윤기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딸을 원했다.

요새는 많이들 딸을 원하는 것 같다.

우리의 바람과는 별개로 아내는 항상 아들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어느날 병원에서 본 초음파 영상에 명백한 아들의 상징이 찍혔다.

문자 그대로 콩알만한 녀석인데도 그 상징은 꽤나 웅장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아들이었다.

의사의 조언 없이도 우리는 우리가 아들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옳았다.

육감있는 여자다.


KakaoTalk_20250807_153130723.gif 아들은 기분이 좋은 발을 동동 굴리는데 이 때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출산 예정일을 두 달 반 앞두고 마지막 둘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오붓한 시간을 보내겠나 싶었다.

아내가 홀몸이 아닌지라 해외는 부담스럽고 우리는 가까운 발리를 갔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는데 임신을 했다면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의사를 만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려 태교 여행인데 아무 호텔이나 갈 수는 없었다.

호텔도 좋은 곳으로 예약했다.

우리는 짧게 호텔 근처를 다녀 온 것을 제외하면 여행 내내 호텔에서만 머물렀다.

괜찮은 호텔이라 음식도 맛있었고 지내기에도 편안했다.

부지도 넓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당분간은 가지기 어려운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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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어디서 할 것인지도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우리는 의사의 능력이 뛰어난 한국에서 출산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집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출산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한국에서 출산을 하면 의료진이 믿을만하고 산후조리원을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럴려면 아내는 적어도 출산 2개월 전에는 한국을 들어가야 하며, 출산 이후에도 약 100일 정도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최소한 5개월은 떨어져 지내야하는 것이었다.

또 휴가를 받아 한국을 들어가야하는 나로서는 아내가 1주일만 조산을 해도 출산 현장을 함께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게다가 출산 후로도 아이를 100일동안은 볼 수 없게 된다.


인도네시아 출산도 단점만 있지는 않다.

출산률이 2가 넘는 나라 답게 의사들의 출산 경험이 많아 위험한 경우는 잘 없다고 했다.

또 식모와 유모를 쓸 수 있는 나라라 편안한 내 집에서 몸조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내는 인도네시아 출산을 선택했다.

장모님도 출산 예정일에 맞춰 인도네시아를 오기로 하셨다.

아내의 결정 덕분에 감사하게도 나는 모든 과정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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