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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Sep 05. 2020

땀으로 간을 한 만두

전 세계 만두 요리사에 대한 경의와 함께

예전 회사에선 사내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었는데, 저는 그중 요리 동호회에 있었습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퇴근 후 회사 근처 학원에서 요리를 하는 모임이었지요. 야근이 없는 날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을 만큼 일상의 소소한 활력소였습니다.


 마카롱, 팟타이, 리조또 등 많은 요리를 만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만두입니다. 만두를 요리하는 과정이 어땠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허허 웃으며 “만두는 그냥 사 먹는 게 나아…”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만두는 요리 동호회의 수많은 메뉴 중 가장 어려웠습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우선 두부, 숙주나물 그리고 돼지고기를 다져 만두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준비해준 고기는 다진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고된 여정은 통째의 돼지고기를 칼로 일일이 썰어 다지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니, 마트에서 다진 고기를 파는데 왜 큰 고깃덩어리를 다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질문은 곧 ‘그럼 마트에서 완성된 만두를 파는데 왜 여기서 만들고 있는 거야?’ 하는 또 다른 질문으로 대답될 수 있으니 불만은 넣어둡니다.


 애써 고기를 다지고 두부와 숙주까지 물기를 꼭 짜 다집니다. 고기에 비해선 비교적 손질하기 쉽지만 번거롭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재료를 다져서 넣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지금은 왜 이리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요? 단언컨대 만두소는 소금과 후추 그리고 요리사의 땀과 눈물로 간을 하는 것입니다. 굽지 않은 생고기가 들어갔으니 간이 맞는지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만두소가 준비되었으면 이제 만두를 빚을 차례입니다. 다행히 학원에선 밀가루 반죽까지 직접 하라는 시련을 내리진 않았습니다. 동그란 시판 만두피에 물을 묻혀가며 만두를 빚습니다. 이제까지 본 많은 만두 전문점의 주방처럼, 내 눈앞에도 크기와 모양이 정확히 똑같은 만두들이 늘어서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개 회사원이지 만두 장인이 아니었습니다. 엑셀 함수 쓰듯 정확하고 깔끔한 결과가 나오면 좋으련만 우리가 빚은 만두는 울퉁불퉁, 삐뚤삐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만두를 예쁘게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느니 어쩌니 하는 옛말이 괜히 원망스럽습니다.


 고생 끝에 완성한 만두를 끓는 물에 삶았습니다. 고군분투하긴 했어도 정해진 레시피대로 만들었으니 맛은 좋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것마저도 착각이었습니다. 만두소의 간이 전혀 맞지 않아 밍밍합니다. 간장을 찍어야 겨우 먹을 수 있을 수준입니다. 만두소의 분량도 제각각이라 어떤 건 두부 맛, 어떤 건 밀가루 맛만 가득합니다.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요리가 복불복이라니… 분하지만 누굴 탓하겠습니까. 맛으로 먹는 만두가 아닌 애정으로 먹는 만두입니다.


 이날 이후로 만두는 만들어 먹는 게 아니다, 사 먹는 것이다 하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조적으로 말하긴 해도 만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던 그날의 경험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도 애정하는 만두라는 요리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으니까요. 전 세계의 만두 요리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결국 힘들긴 했어도 가게에서 사 먹은 만두 10판보다는 내 손으로 만들었던 엉성한 만두 1판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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