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며 자아를 찾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지친 현대인들에게 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리즈'는 오랜 시간 작가로 일해오고 결혼 생활을 해왔지만, 뜻이 다른 남편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지치게 된다. 그녀는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여겨 세 나라, 이탈리아, 인도, 발리의 순서대로 1년 동안 여행을 떠난다.
영화에서 리즈가 겪는 여행은 쉼의 의미도 있지만 자아 탐색의 의미가 크다. 그간 여행작가이자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오래 살아왔던 리즈는 직업, 사람들과의 관계 등 역할을 제외하고 자신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모른다. 이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표현할 단어를 찾고, 모든 역할을 걷어냈을 때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시간을 두는 것이다.
이탈리아
먼저 그녀가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였다. 영화에서는 주로 리즈와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주변 인물들의 대사가 인상깊은 포인트이다. 먼저 리즈는 이탈리아에서 스스로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상한다.
현상유지한답시고 끔찍하게 망가지지
이 말에 담긴 리즈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니까 힘들어도 참고 살자?' 리즈는 그러한 것을 더이상 그만두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리즈가 남편과 이혼한 후 만난 남자친구 데이비드는 리즈의 고민에 대해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같이 있으면 혼자 있는 것보다 나으니 힘들어도 참고 살자는 말을 했지만, 리즈는 더이상 스스로의 힘듦을 견디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리즈도 데이비드처럼 늘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연애를 이어온 캐릭터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결심은 커다란 것이다. 혹시나 외로울지라도 스스로 섰을 때 행복한 삶을 찾겠다는 용기인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리즈의 대사는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 대한 익숙함은 반드시 편안함을 보장하진 않는다. 익숙함을 깨기 싫어서 현상을 유지하다가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리즈처럼 사랑일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일 등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익숙함 대신 새로움을 찾을 용기를 통해 오히려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
그리고 리즈는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한 가지 더 얻는다. 리즈는 그간의 힘듦이 집착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일 수도 있다. 이후 그녀는 포기, 또는 실패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무너지더라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터에서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리즈가 이후의 삶을 강하게 살아갈 거름이 될 것이다.
여행지에서 리즈는 스스로의 깨달음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만난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재정비한다. 먼저 그녀는 '소피'라는 친구를 만나는데, 소피는 리즈에게 자아 탐색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리즈가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 딸, 아내로 표현하니까 소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가 하는 직업 말고 너라는 사람의 모습 말이야.
넌 아직 진짜 너가 누군지 찾고 있구나.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쇼핑을 간다. 여기서 소피가 리즈에게 '파란 드레스를 사입어,'라고 말하지만 리즈는 '누구 좋으라고,'하고 되묻는다. 그러자 소피는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소피는 리즈에게 그녀 자신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친구이다. 진정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직업이나 가족관계 속에서의 역할을 걷어내고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탐구하는 것이 선행된다. 그리고 무언가, 특히 패션 등의 재화를 소비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음식이나 일반적인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주는 가치가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소피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리즈는 이태리어 한 단어를 배우고 인도로 떠난다.
달콤한 게으름, 이태리어로 돌체 파 니엔테
이다. 이러한 단어가 현대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빨리 가도 좋지만 혹시 중간에 힘이 들 때 게으름을 발휘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 그 정도의 쉼은 달콤한 것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인도
인도에서 리즈는 '툴시'와 '리처드'라는 친구를 만난다. 먼저 툴시는 심리학에 대한 꿈이 있는 소녀로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캐릭터이다. 인도에서 리즈는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나아진 상태이다. 그녀가 하는 말이 있다.
로마에서 지냈더니 영혼의 에너지를 충전한 듯하다
그런데 툴시와 리처드의 입장에서 리즈는 아직 무언가 부족한 듯하다. 그녀는 명상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미래의 계획을 떠올린다. 이때 리처드가 현명한 조언을 해준다.
명상실은 네 안에 있어. 노력하니까 문제지. 그냥 포기해버려.
맘을 비우고 가만히 정원을 바라보는 거야. 왜 가만있질 못해!
리즈가 명상할 때에도 생각을 비우지 못하는 모습은 흡사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늘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일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즈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을 할 때에는 생각도 접어야 한다. 미래 계획도 중요하지만 때론 지금 상황에서의 쉼, 재충전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후 인도에서 리즈는 자신의 과거 감정과 마주한다. 그녀는 전남편 스티븐과 이혼 후 데이비드와도 헤어지고, 두 사람과의 추억, 함께하면서 힘들었던 점, 그리고 미안함 등을 털어내기 위해 애쓴다. 이때 그녀가 하는 말이 있다.
쉽게 살고 싶은 게 아니라 힘든 게 싫은 거야
사랑도 리즈에겐 익숙한 부분이 되었지만, 그녀는 쉬운 길보다 힘듦을 털어내기 위해 자립하는 길을 택한다. 후자가 그녀에겐 더 어려운 길이겠지만, 그녀는 점차 자신의 내면으로 다가가며 홀로 설 근육을 기른다.
감정을 털어내려 노력하는 리즈에게 리차드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사랑도 그리움도 바닥나. 감정을 다 비우면 그만큼 여유가 생겨.
... 그럼 꿈꾸던 사랑으로 그 공간을 채워봐!
... 당신은 모든 걸 다 맘대로 하려고 해.
리차드가 리즈에게 조언을 많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에게도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 술을 많이 마셔 아들을 차로 칠 뻔했고, 이때문에 가족들과 멀어졌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리차드는 아이가 크는 것을 못 보았고 영화의 대사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인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리즈도 이 말을 듣고 스티븐과의 관계 속에서 그녀 스스로 느꼈던 미안함을 털어낸다. 인도에서 리즈의 키워드는 스스로의 허물과, 사랑 속에서 스티븐과 상호 느꼈던 미안함을 터는 것이다.
발리
리즈의 최종적인 여행지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 배우가 맡은 '펠리페' 캐릭터가 새로운 인물로 등장한다. 그가 리즈에게 가르쳐준 단어로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앤트바진 :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너무 편한 걸 싫어하고 새로운 걸 찾으려는 사람들
마치 펠리페와 리즈와 같다. 펠리페도 과거 아내와의 결혼 이후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펠리페와 리즈는 익숙함 대신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고, 이것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기도 한다.
발리에서 비로소 리즈는 사랑의 상처를 모두 극복하고 그녀 자신을 찾는다. 이것의 상징이 있다. 먼저 그녀는 도움을 돌려주는 사람이 된다. 그녀가 거쳐오고 만나며 도움과 깨달음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장면이 있다.
리즈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소피와 소피의 남자친구 지오반니, 인도의 리차드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이메일 내용은, 리즈가 발리에서 만난 민간치료사 와얀에게 집을 살 기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와얀이 이혼 후 딸 투티에 대한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돈을 다 써서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리즈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때는 내가 도움받고 싶었지만 이번엔 투티를 도와주고 싶어.
그리고 투티는 이탈리아어로 '모두'라는 뜻이다.
아마 이것은 리즈가 그간 여행을 통해 모두에게 받아왔던 도움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쓴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의 여유도 가득 차서 흘러넘쳐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다고 말하듯이, 이제는 리즈도 여행을 통해 자신의 그릇을 채워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넘치는 부분을 줄 수 있을 만큼 자아를 찾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리즈는 펠리페와 연인사이가 되거나 함께 떠나지 않는다. 이는 그녀가 간신히 찾은 삶의 균형 때문이었다. 그녀는 오래 연애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다 자신을 잃었다. 그녀가 간신히 얻은 균형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뉴욕으로 간다. 그녀는 떠나기 전 발리에서 그녀를 도왔던 촌장과 같은 '케투'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두 사람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네가 날 치료했구나. (케투) 당신도 날 치료했어요. (리즈)
케투의 치료법은 규칙적인 생활이 핵심이다.
아침엔 명상하고 낮엔 신나게 놀고 저녁 땐 케투를 찾아가고 밤에 잘 자고.
몸 안의 간도 웃도록
현대 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와닿는 조언일 것이다. 잘 쉬는 것에는 반드시 커다란 무언가가 필요하지는 않다. 위의 케투의 말처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케투는 리즈에게 사랑에 대한 조언도 남긴다.
때로는 사랑하다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그리고 여행 끝에 리즈가 깨달은 진실탐구법칙이 나온다.
다 버리고 떠날 용기만 있다면, 안락함도 집착도 뒤로 한 채, 몸과 마음이 원하는 진실을 찾아 나선다면.
그 여행의 매 순간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어깨를 부딪친 모두가 삶의 스승임을 안다면, 힘들겠지만 아픔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진실은 당신을 비켜갈 수 없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리즈의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아트라베시아모. 같이 건너보자
혼자 하는 여행에서 같이 하는 관계로 마무리되는 것. 자아를 찾을 때에도 많은 장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자아와 내면의 균형을 유지할 때에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 이것이 관객들도 리즈와의 여행에서 함께 깨닫는 지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