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감을 준 '빨간 머리 앤'

영원한 친구, <Anne of Green Gables>

by 영화가 있는 밤

누구나 마음속에 동화 속 캐릭터를 하나씩 품고 산다. 소설이나 만화, 동화 속 캐릭터에 대해 팬인 경험이 있듯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해리포터》 호그와트 사람들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그 사람들을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지냈다. 판타지 소설뿐 아니라 어릴 적 보았던 만화에서도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정말 친근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야구를 다룬 한 애니메이션을 보며 당찬 주인공에 빠진 적이 있고 《모래요정 바람돌이》라는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바람돌이와 영수네 친구들을 덕질했었다. 그때부터 덕질 일상이 시작되었나 보다.


조금 더 커서는 만화나 소설 속 주인공을 어릴 적처럼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여느 또래들처럼 가수들이나 배우들의 팬이 되었고 유명한 작가 분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주변 사람들, 몇 안 되는 친구들에 더 관심을 가졌다. 더 이상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을 때 때아닌 바람이 불어왔다. 《빨간 머리 앤》. 만만치 않은 성격의 빨간 머리 아이가 그토록 재미있다니. 그 아이가 쉴 새 없이 말하는데 모든 말들이 다 재미있었고 앤이라는 소녀가 하는 깊이 있는 말에 감동을 받았으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설책을 읽은 것은 정말 10여 년 만이었다.


anne-of-green-gables-2770442_960_720.jpg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사실 그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굉장히 긴 시리즈였는데 초등학생 때 우연히 한글로 번역된 편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어서 스쳐 지나가듯 큰 스토리 위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렸을 때에는 몰랐는데 커서 다시 읽으니《빨간 머리 앤》이 그렇게 잘 쓴 소설인 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확실히 책은 커서 제대로 읽어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단순히 한 아이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아주 밝은 성격의 아이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이야기. 독특한 외모와 불 같은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편견 어린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앤은 마릴라부터 시작해 다이애나,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동기들, 하숙집 주인 등 수많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가족을 위해 평생 커스버트네를 돌보기만 한 마릴라가 앤을 통해 삶의 기쁨을 찾았고 딱딱하게 살던 다이애나가 앤과 어울리며 훨씬 밝은 어른이 되었다. 앤을 만나지 않았다면 다이애나가 결코 겪지 않았을 일들을 겪긴 했지만 다이애나는 앤의 실수 어린 권유로 포도주를 마셨을 때에도, 주무시는 조세핀 할머니 위에 실수로 앉았을 때에도 앤을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런 여러 에피소드들을 어렸을 적 TV에서 한 《빨간 머리 앤》애니메이션을 통해 봤고 예전 실사판도 보았다. 커서 《빨간 머리 앤》에 새로 빠졌을 때 옛날 작품들을 봤던 것을 떠올리며 넷플릭스의 《빨간 머리 앤》시리즈도 보고 직접 책들을 사 모아 시리즈를 다 읽어보았다. 마치 《빨간 머리 앤》시리즈를 수집하듯이 '앤 콜렉터'가 되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스스로도 놀랐다.


그런데 《빨간 머리 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즐거웠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저 소설을 읽는 것인데도 기분이 좋아졌고 한층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삶이 환기되는 것 같았고 소설 속 주인공의 팬이 되었다. 앞으로 문학작품 속 캐릭터 중 기억에 남는 한 명을 꼽으라 하면 《빨간 머리 앤》을 꼽을 것 같다.


자신의 평범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Anne with an e'라고, 꼭 이름 끝에 'e'를 붙여달라 요구했던 앤. 참 독특하다. 그녀가 했던 수많은 상상들도 공감이 된다. 앤은 일상적 캐릭터가 아니고 또 나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면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녀도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자신만의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앤도 내가 가진 예민함을 나눠 가진 것 같았다. 그래서 앤 시리즈를 즐겨 읽었나 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앤도 INFP 아니었을까?



각주:

https://www.netflix.com/kr/title/80136311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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