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새와 아기새의 그것과 같다.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하며 놀듯이 아버지는 딸을 목마 태워주며 웃게 만든다. 그 웃음에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부녀는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는 돈독한 사이가 된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울 때 그 관계는 먹이를 물어다 주는 새와 입을 벌리는 새끼 제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어머니와 다른 역할을 한다. 커다란 아비 새가 먼저 하늘을 날며 나는 법을 익히듯이, 아버지는 아기새들이 커서 창공을 가를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날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 어머니의 날이 따로 있다. 각자의 역할이 다름을 알고 그들이 인생껏 주신 상호보완적 도움에 감사하기 위함이다. 그간 영화에서도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았지만 아버지를 소재로 한 작품은 흔치 않다. 그래서 《왓 어 걸 원츠》는 잊혔던 '아버지'를 '딸'이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흔치 않은 영화이다.
왼쪽부터 딸 데프니와 어머니 리비 ㅣ 네이버 포토
'데프니 레이놀즈'는 17살 때까지 아버지 '헨리 대쉬우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만든 스페인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에스테반'도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곁에 없었다. 아버지가 부재할 때 자녀들은 마음에 빈 구석을 느끼고 자신을 반쪽짜리 존재로 느낀다.
데프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품은 데프니의 호기심이 아버지를 찾아 나선 그녀의 모험으로 이어졌다.
데프니와 헨리 ㅣ 네이버 포토
데프니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가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세 명의 아버지 중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던 《맘마미아》의 '소피'와 다르게 데프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바로 사교계의 높은 벽에 부딪힌 것. 데프니의 어머니 '리비 레이놀즈'는 어릴 적 귀족 가문의 '헨리 대쉬우드'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헨리의 가문에서 리비를 탐탁지 않아했기에 그녀는 딸을 임신한 상태에서 쫓겨나고 17년간 데프니를 홀로 키워야 했다. 그러니 대쉬우드 가문에서 데프니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데프니는 그동안 자유롭게 살아오던 삶을 포기하고 사교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까다로운 훈련을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데프니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잃는다. 원래 데프니는 어느 사람과도 만나면 빠르게 친해지고 정이 많으며 규율에 얽매이지 않던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헨리에게 어울리는 딸이 되기 위해 힘없고 틀에 갇힌 소녀가 된다.
그러한 데프니의 변화를 보며 아버지 헨리 대쉬우드 경도 선택의 길로에 선다. 오래전 지키지 못했던 데프니를 보호할 것인지, 또는 대쉬우드 가에 남아 사교계에서 더 높은 지위로 진출할 것인지 사이에서.
데프니와 헨리 ㅣ 네이버 포토
헨리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가 매력적이긴 했지만 역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이었다. 그간 가족의 반대로 아내와 딸을 놓쳐야 했던 그가 명망 있는 인사로 살아온 시간이 행복하기만 했을까. 과거에 아버지로서 용기가 부족했던 헨리는 이번에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다. 딸 데프니를 지키는 것이 헨리의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영화에서는 딸이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인물로 나오는데, 이 부분이 기존 작품들과 다른 점이다. 아기새인 딸이 기둥이 되어줄 아버지를 직접 찾아 나섰다는 것. 하지만 딸뿐 아니라 데프니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를 맞아준 아버지 헨리 덕분에 부녀관계가 완성될 수 있었다.
결국 부녀 관계도 쌍방의 노력과 애정이 따를 때 완성될 수 있다. 함께 있을 때 행복이 배가 되는, 가족 새들의 화합. 영화의 제목 《왓 어 걸 원츠》처럼 한 소녀로서의 딸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보길 바랐던 데프니의 마음은 보편적인 마음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 새삼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목마를 태워주며 저녁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 손에 들고 온 우리의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