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꿈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역경은 있기 마련이다. 아무 비탈길 없이 정상에 오르고 싶어도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어려움을 거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스스로를 단련하며 10대의 어린 것만 같았던 청소년이 멋진 성년기의 초입에 접어드는 것이다. 《메이저》를 지나 《언제나 우리의 사랑은 10cm였다》에서는 꿈을 좇는 10대가 어떻게 어려움 끝에 목표에 다다르는지를 보여준다. 성년이 되기 전 꿈이 있어 성숙했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요리를 맛보자.
10대 청소년 시절에 이루고 싶던 꿈이 기억나는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꿈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을 뛰게 했을 것이다.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잘하는 것,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품었던 꿈은 쉽게 잊힌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을 때 그 희열은 잊히지 않는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겠지만, 원하는 일을 향해 달려갔던 시절은 삶의 자산이 된다. 여기에도 예술을 향한 꿈을 꽃피웠던 두 청춘이 있다. 《언제나 우리의 사랑은 10cm였다》에서 '미오'와 '하루키'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인생길을 찾아나갔다.
왼쪽부터 하루키와 미오
미오와 하루키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벚꽃나무 아래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맺어주는 운명이 있듯 둘은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끌린다. 그때부터 졸업 전까지 3년간 둘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둘은 흔히 말하는 남사친, 여사친의 사이를 유지하지만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내성적이었던 미오는 부끄러운 마음에 하루키에게 관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하루키도 둘의 우정을 해칠까 봐 미오에게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둘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물리적으로도 10cm 이상 가까워지지 못했고 심리적으로도 10cm의 거리를 넘어 사랑을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미오와 하루키가 만난 벚꽃 나무 아래 ㅣ 픽사베이
그럼에도 3년간 함께한 미오와 하루키의 학교생활은 답답하기보다 천천히 데워지는 만두 같은 느낌을 준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만두가게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동백 씨가 용식 씨에게 '뜨거웠다가 금방 식는 사랑은 싫다, 천천히 데워지는 만두 같은 사랑을 하자'라고 말한다. 미오와 하루키의 사이는 딱 그 만두와 같다. 한꺼번에 뜨거워졌다가 식는 관계가 아니라 천천히 서로에 대한 온도 차를 맞춰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거리를 좁혀가는 둘. 미오와 하루키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같이 붙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둘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은 학생들이었다. 미오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미술에 조예가 깊었고 하루키는 형의 영향으로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미술부와 영화 연구부에 속한 두 사람은 서로의 재능을 묵묵히 응원하며 서로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미오의 꿈 ㅣ 픽사베이
그러다 둘의 거리가 한층 멀어지는 일이 생긴다. 미오와 하루키가 과거부터 인연이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미오가 어릴 적 물에 빠졌을 때 하루키의 형이 그녀를 구해주었고 그 때문에 하루키는 형을 잃는다. 하루키에게 형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던 미오는 죄책감에 하루키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녀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모르는 하루키는 미오에게 답답함을 품는다.
하지만 제목이 말해주듯 둘의 사이는 언제나 10cm였지 않은가. 두 사람은 '꿈'을 매개로 다시 가까워진다. 10대 청소년들이라면 늘 겪는 과정이듯 미오와 하루키도 꿈에 대한 회의로 괴로워했다. 미오는 하루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다시는 붓을 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하루키는 자신의 꿈과 형의 꿈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하루키의 꿈 ㅣ 픽사베이
하루키는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형을 따라 똑같은 장래희망을 품었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꿈이라 믿었던 하루키는 정작 미국 유학의 길 앞에서 처음으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늘 자신이 품었던 꿈이라 생각했던 것이 다른 누군가의 목표였음을 알게 될 때 누구나 방황하지 않나. 특히 어릴 적 청소년들은 주변 어른들이나 멘토들이 정해주는 꿈을 쉽게 품는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는 다른 이가 심어 준 꿈이 내가 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루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화 제작부에서 실력 좋은 감독으로 활약하며 유명 영화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미국 유학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다들 하루키가 아무 고민 없이 유학길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유학 전에 잠수를 탄다. 그때 그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은 다름 아닌 미오였다. 하루키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내고 다시 붓을 잡은 미오는 하루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의 영화에 쓸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
사랑의 그림 ㅣ 픽사베이
눈 오는 밤 미오의 그림을 받은 하루키는 그녀에게 폭풍처럼 화를 낸다. 그것은 미오에 대한 분노였다기보다 스스로의 방황에 대한 혼란스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루키의 감정을 이해하는 미오는 그에게 번쩍 하는 깨달음을 준다. '하루키는 영화를 찍을 때 가장 빛나!'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오는 하루키를 10cm의 옆에서, 뒤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3년 동안 누군가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빛이 나는지를 알 수 있다. 미오는 하루키가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가장 반짝거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외치며 그녀는 하루키의 손에 그림을 들려준다.
미오가 그린 '사랑의 그림'은 하루키가 영화 연구부를 졸업하기 전에 만든 작품에 쓰기 위해 부탁했던 그림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핑크색으로 하트를 그리고 형형색색의 불꽃놀이로 사랑을 형상화했다. 이와 달리 미오는 오랜 고민 끝에 하루키와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10cm 거리에서 같은 창밖을 보고 있는 둘의 모습. 다른 어떤 그림보다도 그들에게는 사랑의 형태를 가장 잘 담은 그림이었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 하루키 ㅣ 픽사베이
미오와의 대화로 하루키는 그녀와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꿈의 방향을 원래대로 설정한다. 형의 영향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원래 하루키라는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나아갈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고민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7년 간 타지에서 실력을 갈고닦는다.
하루키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자 미오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하루키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지자 미오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방학 때마다 마을 분들에게 그림 교육 봉사를 하며 그녀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꿈이었고, 미오는 원하는 대로 미대에 진학해 미술 선생님이 된다.
꿈의 형태를 보는 미오와 하루키 ㅣ 픽사베이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사랑은 10cm였다》의 10cm는 사랑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일깨워준 거리'이다. 그래서 영화는 사랑보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미오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하루키는 미국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으로 이름을 알린다. 두 사람은 꿈을 이룬 후에 10cm의 거리를 좁혀 사랑을 이룬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아닌, 서로의 꿈을 곁에서 응원하는 친구 사이였기에 목표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더욱 감동적이다.
미오와 하루키는 학창 시절 자신의 진정한 꿈을 깨닫는 과정을 함께했고 목표를 이룰 때에는 그것에 집중했다. 10cm의 거리는 사랑을 이루는 데 먼 거리였지만 그 10cm의 간격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어도 갈 길을 다시 찾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열망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3년 간 서로의 꿈을 일깨워준 자극제였던 것이다.
꿈을 향해 도약하는 10대 ㅣ 픽사베이
영화 속에 나오는 두 사람처럼 예술 분야로 가는 것은 때론 어렵다. 또한 재능을 가진 일이어도 그것을 선택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미오와 하루키의 경우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같아 원하는 꿈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오와 하루키는 자신들이 10대 시절 겪은 방황을 보여주며, 마음이 향하는 꿈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하고 방향을 재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꿈'을 찾아갈 때 이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꿈에 대해 회의가 생길 때,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 10cm의 거리에서 서로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꿈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