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산다면 우울한 때도 지나가는 거야
'우울함'이 꼭 나쁜 것일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나 우울한 시기를 거친다. 그리고 '인생을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듯이 우울한 시기도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울하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랑비를 맞는 때다. 잠시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몸으로 비를 맞는 것을 나쁘다 할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이 가랑비이건 소나기이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우울한 시기를 종종 겪었다. 학창 시절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공부에 매진하느라, 또 커서는 사회 초년생 준비에 매진하느라. 그 시간 동안 텀을 두고 내렸던 비는 대부분 가랑비였지만 소나기가 대차게 쏟아진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비를 멈추라 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 대고 "비야, 멈춰라!"라고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 것처럼. 그때는 방법이 하나였다. 우산을 쓸 수 있으면 머리 위에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거나, 우산이 없다면 내리는 비를 그저 맞는 것.
궂은 날씨를 지날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에 축축하게 옷이 젖으면 불쾌하지 않은가. 소나기를 대차게 맞은 후 사람들을 만날 때면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애써 지어내는 웃음이 전부였다. 그때는 우울한 것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그때의 생각을 어리석었다 탓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생각이지 않은가.
그런데 은사님이신 선생님과의 대화로 날씨가 개었다. 대단한 위로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비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고, 스스로의 예민함을 알지 못했으며 그것이 긍정적인 것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에게 내린 비는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맞았던 비가 산성비가 아니라 그저 물방울들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비를 맞았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른 채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말을 들으며 때론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다. 또한 누구나 그렇듯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다. 직장인들에게는 일이 중요하듯 학생 시절에는 공부가 전부였기에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부에도 왕도가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에게 맞는 학습 방식을 찾아 나간 시간도 이후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니 내게 내렸던 가랑비도, 소나기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좋고 나쁨을 떠나 비는 그저 비였다. 우울함이 그저 우울함이듯이,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머리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누구나 주변으로부터 상처도 받고 다투기도 하며 원하는 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나름의 의미가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저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울한 때도 지나가는 거야'라는 것이 머릿속의 교훈이 아닌 마음속의 감정으로 쌓였던 것이다. 머릿속으로 교훈을 '글'로 생각하면 그것은 어떤 레슨(Lesson, 메시지)을 얻기 위해 부러 노력하는 것이지만 마음속에 이미지가 스쳐 지나가듯 '감정'으로 한 겹 쌓이면 그것은 내가 더 나아진 것이다. 사람의 성장이 꼭 글로 쓰인 교훈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무언가 얻는 것이 꼭 텍스트화 되어야 하는가?
텍스트가 아니어도 스쳐 지나가는 사진처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겹처럼 무언가가 쌓이면
그것은 곧 내가 나를 이해하는 놀라운 과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