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의 시작, 그리고 기록

Week 3

by 만두요정

저번 글을 쓴 이후로 혼자서 으쌰으쌰 해보는 시간을 좀 가졌다.

이번 달로 8개월을 시도를 했지만 사실 우리가 정확하게 가임기에 충분한 사랑을 나눈건 다섯달 밖에 되지 않으니까, 한달만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도해보자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혹시를 대비해 이미 8월 20일 남편의 반차 날에 내진을 예약해 둔 상황이였고, 나는 어떤 결과에도 상처받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2024년 8월 15일 (목), 9DPO


아침부터 박장대소를 하며 깼다.

근 며칠 이상하리만큼 꿈을 많이 꿨는데, 그 날은 발리에서 굳이 Hong Bao Dumpling 이라는 빨간 간판의 연기가 모락모락나는 2층짜리 만두집을 가서 만두를 먹어야겠다고 씩씩하게 숙소를 나서는 앞 뒤 맞지않은 꿈을 꾼거다 (물론 그런 만두집은 존재하지 않음).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는 올리한테 "나 만두먹고 싶나봐" 하면서 꿈 얘기를 해주니, 올리 왈 홍바오는 중국인들이 명절에 돈을 주는 빨간 봉투를 의미하는거라며 너가 어디서 홍바오라는 단어를 들었나보라며 웃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무슨 꿈이 이렇게 좋아?!


전 같으면 배란 후 6일차 부터 안절부절 임신 테스트기부터 찾았는데 6개월 째 반복된 실패에 이번에는 그냥 생리 때 까지 기다려볼까 하다가, 이상하게 꿈이 기억에 남아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희미하게 뜬 줄.

예전에도 한번 이렇게 연하게 떴다가 이틀만에 사라진 적이 있어서, 너무 일찍부터 신나하지 않기로 했다.

뭔가 조금 더 확실해질 때 까지, 며칠간 좀 더 시켜보자고 마음먹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않고 하루를 보냈다.


2024 8월 16일 (금), 10DPO


선이 진해졌다. 이틀만에 사라졌던 저번과는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믿기지 않는 마음에 여러번 테스트를 해봤는데 계속해서 꽤나 선명한 선이 보였다.

정말 임신인가? 정말?

마음으로 자연임신은 어느정도 내려놓고 다음주 화요일에 올리랑 함께 병원 예약까지 해놨는데?

아직까지는 믿기지도 않을 뿐 더러 어디 잘못 말했다가 소중한 이 순간이 날아가버릴까봐 두렵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드디어 내가 임신을 한 것 같다고 소문내고 싶은 온갖 감정들로 벅차올랐다.

그래도 언니와는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서 언니에게 전화해서 임신을 한 것 같다하니 언니는 나보다 더 기뻐해주고 축하해주었다.

아직 올리, 아빠, 엄마 어느 누구도 모르니 비밀 지켜달라고 하며 그나마 소문내고 싶은 감정을 눌러담았다.

정말 임신인걸까? 믿기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보니 요즘 심장이 너무 강하고 빠르게 뛰어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불안증세가 생겼나보다 하며 혼자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였구나.

요 며칠 느꼈던 가슴의 통증, 강하고 빠른 심장박동, 퇴근하고 나면 쇼파에 앉아서 쓰러지듯 잠들어버린 평소의 나같지 않던 행동들... 모든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2024년 8월 17일 (토), 11DPO


선이 더 선명해졌다.

그래, go baby go!


오늘 회사 친구의 생일이라 저녁에 하우스파티 + 미니골프 약속이 있었는데, 친구에게 사실을 말하고 하우스파티에 잠깐 들러서 얼굴 보고 선물만 주고 돌아왔다.

지금은 나의 안정과 건강이 최우선이다.


올리에게는 다음주 올리의 생일날 서프라이즈로 말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 날 아빠 엄마에게도 얘기해줘야지!

엄마는 내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분명 울어버리고 말거다.


그나저나 올리에게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할까?

아니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있다니, 이런 고민이라면 평생해도 좋을 것 같다!


2024년 8월 18일 (일), 12DPO


아침 첫 소변 테스트 결과가 이상하게 전 날 보다 연해진거 같아서 오후 3시 쯤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왠걸, 전날보다 눈에 띄게 선명해진 줄이 보였다.

정말 별거 아닌거에도 예민해지는 매일이다.


오늘은 갑자기 몸이 너무 안좋았다.

언니 말로는 자기도 몸살처럼 앓아누었다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하지말라고 위안해주었다.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특이사항들:


- 미친듯이 빠르고 강하게 뛰는 심장

- 더부룩함과 배 부글거림

- 무거운 가슴 (하지만 이건 생리 전 증상과 비슷해서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 피부 트러블 (일년에 한두번 날까말까 하는 여드름 같은게 등에 두어개 올라왔었고, 얼굴에도 여드름까진 아니지만 뭐가 살짝살짝 올라왔다. 임신하고 레이저 시술 받을 수 있나 검색해봤는데, 결론은 앞으로 난 못생김을 유지하고 10개월을 버텨야할 것 같다)

- 피로감

- 머리가 터질듯한 편두통 (가만히 앉아있어도 조금만 움직여도 뇌가 울리는 느낌의 두통이 느껴진다. 더 많은 피 공급을 위해 내 혈관들의 부피를 늘리려고 뇌가 열일하느라 그런거라하니, 편두통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 몸살 기운 (그냥 다 아프다. 온 근육이 아프고 하물며 머리 넘길 때 모근까지 찌릿찌릿 아프다. 침 삼킬 때 귀도 아픈게 그냥 마치 심한 감기몸살 같은 느낌이다)

- 일어날 때 느끼는 현기증/어지러움


내 몸이 아프고 힘들고 예민해져 있을수록 아기가 내 몸에 자리잡으려고 고군분투 중인거라고 생각을 하니 내 한몸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된다.

난 이렇게 계속 힘들고 아파도 좋아, 너만 건강하다면!


2024년 8월 19일 (월), 13DPO


남편에게 "내일 현장을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한데 우리 병원은 자기 다음 반차 가능한 날로 다시 예약해줘" 라고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거짓말을 했다!

우리 검사도 더 늦어지겠네 하며 살짝 아쉬워하는 남편을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꾹 눌러담았다.


언니와 매일 통화를 하며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공유하고, 3-4개월 터울로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함께 키울지 상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흐른다는 느낌도 든다.


보통 12-14주 전에는 자연유산이 종종 일어난다고 해서 어서 안정기에 들기만 바랄 뿐이다.

아직은 3주 6일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아참, 오늘은 언니 아기 옷 몇벌과 선물을 몇가지 사면서 우리 아기 옷 한벌도 샀다.

올리에게 할 서프라이즈 아이디어가 대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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